<문화논단>北 정치쇼에 ‘제재’ 흔들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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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

2018년 9월, 평양에서는 북측의 열렬한 환대 속에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항 영접에서부터 북한군 의장대의 사열 및 21발의 예포 발사까지 최고의 격식을 갖춰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둘러싼 북측의 환대 뒤에는 치밀한 전략과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음을 놓쳐선 안 된다.

필자가 속한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에서는 북한 행태를 과학적으로 예측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의 심층 조사에 응한 20명의 북한 전문가 중 대다수인 17명이 그동안 북한을 연구했던 경험에 비춰 북한 행태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북한을 20년 이상 연구한 전문가들일수록 이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이들이 북한의 행태를 예측하는 데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대한 접근성, 북한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고 왜곡됐다는 데로 모아진다. 북한에 대한 선입견과 희망적 사고 역시 북한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장애가 됐다고 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 담론에 따라 북한의 행태 예측이 영향을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객관적인 판단과 예측을 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고백과 충고를 던져주었다.

북한과 같이 폐쇄적이고 수령 중심의 전체주의적 사회는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정확히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며 그러한 전제 아래서 북한을 상대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중적인 부담이 있다. 내일까지 평양에서 전개되는 화려하고 성대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변화한 모습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예의 북한 행태 예측 실패의 또 다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보여준 비핵화와 관련된 일련의 조치와 행태의 변화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전제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유연한 입장 변화 역시 강력한 제재에 따라 조성된 위기상황을 모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의 구멍이 뚫렸다는 보고서 초안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격돌하고 평양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한·미 외교장관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최대의 압박에 대해 논의한 것도 이 같은 과거 경험과 현실 인식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스스로 정책과 입장을 바꾼 예가 극히 드문 완고한 체제다. 그들 스스로 자주와 주체를 내세우지만, 그 배경에는 역시 체제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정한 현실주의적·타산적인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을 그들의 의지·계산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결정적 동인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뿐이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이 변화하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데 대해 전문가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와 현란한 정치쇼 뒤에는 극장 운영을 놓고 흥정과 시비가 치열하다. 북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면 북한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직 그 같은 긍정적 변화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최선의 전략은 북한에 대한 물샐틈없는 제재를 유지함으로써 핵보유국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경로가 결국 문 대통령이 소망하는 평화와 번영의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