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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11월 02일(金)
역사·일상으로 본 남성판 ‘82년生 김지영’…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남자를 마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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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학자 최태섭은 “남성의 이상형으로 제시됐던 과거 상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계에 봉착했고,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시도는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남성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성찰을 바탕으로 시스템과 지배를 해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다. 자료사진

- 한국, 남자 / 최태섭 지음 / 은행나무

한국 남성은 역사상 단 한번도
‘이상적 가부장像’이룬 적 없어

목숨 건 전쟁과 산업 현장에서
가족과 不通…‘금융위기’ 타격

2000년대 남성, 자기피해자化
불안한 입지 속 여성 혐오까지

새로운 미래 그리기 위해서는
남자라는 정체성 깊은 고민을


84년생 사회학자 최태섭의 ‘한국, 남자’는 남성판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고 ‘한국, 남자’는 인문사회 교양서이며, ‘82년생 김지영’은 김지영이라는 개인이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핍진한 순간들을 짚어내 한국 여성이 처한 보편적 현실을 드러냈다면 ‘한국, 남자’는 한국, 남자 전체를 주인공으로 그가 만들어진 역사적 순간을 추적해 남성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전개 방향이 다르다. 하지만 ‘한국 남성’이 어떻게 탄생하고 자라 지금에 이르렀고 어떤 모순과 문제 앞에 직면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학 보고서라는 점에서 ‘김지영’과 한 쌍을 이룬다. 도대체 김지영은 왜 이런 현실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어쩌면 ‘김지영’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이 ‘나의 일이야’라는 ‘공감’이었다면, ‘한국, 남자’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나는 아닌데’라는 ‘불편함’일 것이라는 점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모른 척할 순 없다. 또 최근 페미니즘 책들이 쏟아지면서 생긴 ‘여성 연구와 남성 연구 간 심각한 불균형 구도’ 아래 나온 남성 연구자의 본격 남성학 책이라는 점도 반갑다. ‘잉여사회’에서 잉여의 삶을 사는 젊은 자기 세대를 분석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무너지는 남성 권위, 청년 실업과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며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자기 세대 남성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저자가 규정한 한국 남자가 직면한 상황은 ‘곤란함’이다. 먼저 한국 남성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이상적 남성상’을 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 남성상은 서구에서 18세기 후반∼19세기 초에 생긴 것으로 역사가 짧다. 육체적 강인함, 생존을 위한 원시성은 기본이고, 민족운동과 계몽주의 세례 속에 국가와 민족을 위한 두려움 없는 헌신이 더해진 뒤 자본주의 고도화를 거치며 가족의 부양자이자 제왕인 가부장적 남성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학업 성적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가모장제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 역시 다르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가부장제가 여전히 굳건하다. 그런데 이 같은 한국사회에서 정작 이상적 가부장적 남성상이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한국 근현대 가장의 시조인 조선 사대부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따라서 양반가 부인들도 가사 노동은 물론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그 뒤 민족주의 발흥과 함께 근대적 남성성이 수입됐지만 이를 누릴 수 없었다. 식민지의 남성이란 일본 제국의 남자와 같을 수 없었고, 궁극적으로 자국 여성에 대해 실질적 권한이 없는 이등 국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승만 정권이 호주제, 부계 승계를 법적 질서로 승인하면서 한국 가부장적 질서의 원형이 마련됐고 박정희 정권 때 반공주의, 의무 병역제를 기반으로 확고해졌다. 국가 건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성이 호출됐고 경제성장과 함께 성공에 대한 욕망과 믿을 수 없는 세상 속 운명 공동체 등이 더해져 더 공고해졌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상이군인이나 베트남전에 참전해 그곳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 군인들을 보면 ‘목숨을 건 남성성’은 ‘영광’보다는 그림자를 더 짙게 남겼다. 고도성장기에 가족을 위해 산다는 가장은 해외로 나가거나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정작 가족 안에 부재(不在)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가부장제가 흔들리면서 이를 바꿀 기회가 왔지만, 이에 대한 엄정한 비판보다 남성들이 겪는 고통과 외로움에 초점이 가면서 기회를 놓쳤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열렬한 반응만큼이나 반론과 비판이 있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한국에서 남자들은 단 한 번도 온전한 가부장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역사를 거쳐온 지금, 한국 남성의 모습은 어떤가. 저자는 2000년대 한국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기 피해자화’라고 했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가 ‘남성의 위기’로 전치되면서 만들어졌던 ‘불쌍한 남자’의 수사가 남성의 위기 속에 재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혐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페미니스트들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여성 학우들의 문제 제기가 담긴 대자보를 몰래 찢는다. 페미니즘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민원을 넣고 온라인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음해하는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며 연대의식을 키운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자 의식은 주류 남성이 아닌 소외된 남성들의 몫이라는 데도 주목해야 한다. 남성 사회의 주류는 이 구도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두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이미 유리하게 살고 있는데 굳이 이 판에 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계급이든, 남성성에 대한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든, 섹스 시장으로부터 배척당한 것이든 간에 이 전쟁에 끼어드는 제1 동인은 단연코 ‘결핍’이다.

결국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는 그 시스템과 지배를 해체하는 법에 대한 고민이며, 그 출발은 오늘날 남자와 여자에 대해 더 자세히 뜯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도 이해를 위한 작업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실 남자들은 생각보다 남자를 모른다. 그저 자기와 주변 남자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파편으로 하나의 상을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남자로서의 자기 인식인 동시에 사회적 객관을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남자라는 정체성을 사유하지 않고서 이 질문에 답하는 길은 없다. 이 책이 나에게, 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실마리를 제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280쪽, 1만5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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