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막말은 정치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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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인들의 막말 이제 고질화
野 청년 후보의 險口 더 씁쓸
내년 총선 땐 언어 품격도 봐야

명연설과 함께 한 修辭學 발전
키케로 링컨 처칠 설득의 언어
증오 아닌 감동의 말이 더 강력

자유한국당 청년대표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한 젊은이가 유세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던진 막말이 거센 후폭풍을 가져왔다. 한국당 의원들이 5·18 및 유공자들을 모독하고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일이다. 가뜩이나 홍준표 전 대표의 발언 행태로 인해 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지지율 하락도 경험한 한국당으로서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당의 중진들은 앞다퉈 유감을 표명하고 막말 사태를 수습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5·18 망언에 대한 정치권 공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기미다.

정치권에서 막말과 설화(舌禍)는 야당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러 해 전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던 시절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던 시사평론가들이 막말을 일삼아서 비난을 자초하고 결국은 자신들이 관련된 정당에 부담을 안겨준 전례가 있다. 최근에도 여당 대표가 야당 정치인들 행태를 정신적 장애에 비유했다가 사과한 일이 있다. 하지만 이번 막말 사태는 이전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인터넷 방송이나 단체 행사에서 있었던 발언이 아니라, 정당의 공식적인 행사, 즉 정치적 의견 표명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잘못된 비유나 실언이 아닌 작심 발언이었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막말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공식 석상의 발언과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자비한 막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정치인들 역시 한국과 관련해서 잊을 만하면 숱한 망언(妄言)과 막말을 내놓아 우리 국민의 공분을 일으켜 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유난히 씁쓸한 것은, 그 발언이 젊은 정치 지망생 입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따르는 정치 선배들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정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자리에서 구태의연한 정치권의 추태를 반복한 것이다.

정치부 기자로 은퇴한 어느 인사가 사석에서 한국 정치권의 언어 사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한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에는 배워볼 만한 사자성어로 정치 상황을 묘사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정치인이 드물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한자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쓴 지는 오래고, 그것이 이제 시대에 맞지도 않다. 하지만 그 전직 기자가 던진 메시지는 정치인들이 반드시 고사성어를 써야 한다는 것도, 정치인들이 고사성어를 자유자재로 쓸 만큼 유식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 말의 숨은 뜻은 정치인들이 쓰는 말이 일반 시민들이 듣고 성찰과 공감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사학이라는 분야는 전통적으로 정치적 연설과 더불어 발전해 왔다. 특히, 왕정의 군주가 아닌 공화정의 지도자들이 수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로마의 키케로가 그러했고,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마틴 루서 킹 목사,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그러했으며, 최근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그러했다.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명연설들에서 그들은 뛰어난 수사를 통해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설득하려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들은 역사에 남는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적을 모욕하는 분노와 혐오의 언어가 아닌, 적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 언어를 통해 그들은 불가능해 보였던 타협을 이뤘고, 자신을 반대하던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한국이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도 더 지났다. 그동안 많은 곡절이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켜온 나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설문조사를 하면 정치인들과 국회에 대한 신뢰는 정부나 기업, 언론 등 다른 기관 및 그 대표자들은 물론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보다도 낮게 나타난다. 일반 시민들에게 정치인들은 거짓말 아니면 막말만을 일삼는 사람들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인들은 벌써 총선을 앞두고 준비에 나서고 있다. 정치인들과 정당의 총선 준비 점검 리스트에 순화되고 수준 있는 말을 쓰는 것이 꼭 포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