女子라서… 男子니까… 아직도 이런 ‘불편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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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가부장 / 시드라 레비 스톤 지음 / 사우
- 을들의 당나귀 귀 / 손희정, 허윤 등 지음 / 후마니타스

가부장적 가치·신념의 내면화
여성 스스로 불신하게 만들어
남성 모방하는 ‘명예남성’ 化

남성 중심적인 한국 아재 예능
女예능인에 비난·가혹한 시선
걸그룹에겐 성추행·불법 촬영

젠더·인종·종교 대립 벗어나
깨어있는 각성 통해 해결책을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한국 영화 39편 가운데,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25.6%인 10편에 불과했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로, 3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름을 가진 여성이 2명 이상 나오는가, 이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나누는 대화가 남성과 관련되지 않는가이다. 뒤집어보면 많은 영화에서 여성이 등장하지 않고, 나오더라도 각각 남성과 관계된 여성들로 서로 만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만나도 남성을 사이에 둔 사랑과 질투 같은 남성 관련 이야기만 나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이 등장하고 남성 영웅과 연약한 여성 구도를 뒤집어 남자를 구하는 여전사 알리타가 나오는 등 ‘페미니스트 리부트’ 영화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기준인데, 이를 통과한 한국 영화는 30%도 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세대를 가로질러 공명하며 사회적 신드롬이 된 것과 같은 이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나온 ‘내 안의 가부장’과 ‘을들의 당나귀 귀’는 이 같은 젠더의 틀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시드라 레비 스톤의 ‘내 안의 가부장’은 제목 그대로 ‘내면화된 가부장’에 주목한다. ‘내면 가부장’이란 수천 년에 걸쳐 세상을 지배해온 가부장적 가치와 신념이 우리 안에 내면화된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여성들이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데에는 여성 안에 가부장제가 내면화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저자는 내면의 가부장을 인식의 경계 너머에서 작동해 무의식의 그림자를 통제하는 ‘그림자의 왕’이라고 부른다.

내면 가부장의 작동 방식은 가부장제와 같다.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역할도 다르고,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다. 이런 신념은 여성이 스스로 불신하게 만들며, 다른 여성들도 신뢰할 수 없게 한다. 여성과 여성적인 요소들보다 남성과 남성적 특질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 같은 프레임 때문에 출산은 당연한 것이 되고, 가사 노동은 가치 없는 것이 되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직장을 포기하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육아보다 훨씬 더 멋지게 여긴다.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내면 가부장을 깨닫기 전까지 전문직인 자신에 대해 일종의 우월감을 가졌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남성을 모방한 ‘명예 남성(imitation man)’에 불과했다고 밝힌다. 또 내면의 가부장은 여성성과 강한 힘의 양립은 부인해 강하고, 잘생기고, 멋진 왕은 가능해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능력 있는 여성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내면 가부장의 반대편에 있는 가모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가모장은 반대로 여성을 자랑스러워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관념이다. 권력, 경쟁, 무감각한 섹슈얼리티를 비판하고 감정, 협력, 자연, 사랑, 가족 양육에는 높은 가치를 두는 한편, 남자들은 언제나 경쟁하고 과시적이며 싸우는 걸 좋아하고, 남성이야말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감정적인 어린이로 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남성 혐오도 이 같은 가모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을들의 당나귀 귀’는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본 한국 대중문화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임윤옥, 김지혜 활동가와 페미니스트 문화연구가 손희정이 여러 대중문화 연구자들을 만나 대담한 동명의 팟캐스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TV 예능부터 드라마, 영화, 게임까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여성차별적 현실을 드러내는데, 레비 스톤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 대중문화의 ‘내면화된 가부장’, 대중의 ‘내면화된 가부장’이다.

아재 엔터테인먼트를 보자. 한국 예능판은 남성중심적이다. 여성 예능인은 진입할 기회조차 드물고, 어쩌다 여성이 등장하면 훨씬 가혹한 시선이 적용된다. 문제를 틀리면 무식하다고 손가락질하고, 돈을 아끼면 너무 구두쇠라고, 돈을 쓰면 사치스럽다고 비난한다. 가족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딸바보 아버지’도 불편하다. 영유아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딸을 둔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딸바보’를 자청하고 딸을 자신의 진짜 애인이라거나, 시집 보내기 아깝다며 딸의 섹슈얼리티를 소유하려 든다는 것이다.

노동 혹사 수준인 걸그룹도 다시 본다.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대부분 작사, 작곡 능력을 키우며 성장해 나가는 데 비해 걸그룹은 훨씬 더 혹독한 노동으로 소모된다. 다이어트로 몸매를 유지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출해야 하고 빗속 야외무대에서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 춤추는 근성을 보여야 한다. 수시로 일어나는 남성 팬의 불법 촬영과 성추행을 견디는 것은 물론, ‘82년생 김지영’을 읽거나, 페미니즘을 연상시키는 티셔츠를 입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스트로 몰려 곤욕을 치른다.

유독 여성에게 박한 한국 영화도 도마에 오른다. 세계적 ‘페미니스트 리부트’인 시대에 한국 영화는 여전히 ‘아빠뽕’에 빠져 있다. ‘괴물’에서 ‘부산행’까지 고개 숙인 아버지는 가족을 구하고 다시 영웅이 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남성을 위로하는 영화가 남성 관객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내면화한 여성 관객 모두를 위로하며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자가 주인공이 되는 반면, 여성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376쪽, 1만8000원.

‘굿 걸도 배드 걸도 아닌 새로운 길’, 레비 스톤이 제시하는 내면화된 가부장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내면의 가부장과 정반대인 내면의 가모장도 아닌,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이원론에도 빠지지 않는 보다 포용적인 길. 저자는 남성과 여성을 넘어 모두가 고유한 선물을 가지고 세상에 왔고, 젠더나 인종·민족·종교 혹은 분열을 초래하는 어떠한 기준으로 구분하려 한다면 이 선물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는 양극단 사이에 ‘깨어 있는 에고’를 주문한다. 깨어 있는 각성만이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256쪽, 1만6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