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재택의료 위한 의료계 참여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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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1970∼1980년대에는 동네 의사가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를 찾아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렵던 시절, 왕진은 병원을 찾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소중한 기회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왕진은 사라진 추억이 됐고, 지금은 대다수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진료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관이 확충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왕진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집에서 의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 노원구의 임대아파트에는 2년 전 낙상으로 늑골이 부러진 뒤 누워 지내는 77세 A 씨가 있다. A 씨는 상·하지 관절이 구축되고 당뇨병·고혈압·치매·욕창 등에 시달리고 있어 항시 통증을 호소하지만 특별한 수입이 없어 요양병원에 가지도 못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아파트에서 병원 진료를 가려면 보호자인 아내 힘으로는 어렵고 비용이 비싼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한다.

생후 25주에 760g으로 태어난 두 살 B 양은 미숙아망막병증, 신생아괴사성장염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할 예정이다. 퇴원하더라도 가정용 인공호흡기로 호흡하고, 코에서 위까지 직접 연결된 비위관으로 우유를 먹어야 한다. 엄마는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무거운 의료 장비를 부착한 B 양을 안고 병원으로 가야만 한다.

고령화가 심해지고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단순히 경제적·위치적 어려움이 아닌 다른 이유의 왕진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노인의 57%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등 다양한 의료적 욕구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통계에 따르면 가정용 인공호흡기와 의료용 산소발생기를 집에서 사용하는 환자는 2017년 1만9695명에서 2018년에 2만2781명으로 1년 만에 15.6% 늘었다. 고령화를 우리보다 먼저 경험한 일본은 최근 지역 포괄 케어를 도입하면서 방문진료를 포함한 재택의료를 적극 시행해 2만여 의원이 재가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과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대만도 2016년부터 재택의료 통합제도(IHHCP)를 시행하고 있는데, 1453개 의료기관에서 팀을 구성해 1만500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에 방문요양급여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가정전문간호사가 6만9000여 명의 환자 집을 방문해 가정간호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중증소아환자와 장애인·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재택의료가 제공되고 있지만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왕진 가방’을 새롭게 부활시켜 병원 이용이 어려운 더 많은 사람에게 재택의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그 시작으로 일차의료기관 의사가 거동불편 환자를 찾아가 진료하면 건강보험에서 왕진료를 지원하는 ‘일차의료 왕진 수가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연말까지 의원을 대상으로 참여기관을 모집하는데, 현장 의료인의 협조와 도움이 꼭 필요하다. 복지부도 시범사업을 통해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의료정책은 안타깝게도 집에 있는 환자에게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재가환자에 대한 의료적 지원은 제도의 사각지대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병원에서 집으로’ 재택의료를 활성화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지원하지 못했던 소외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국민과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포용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