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나 ?… ‘소설’ 보다 ‘민담’ 처럼 사는거지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펭하’하고 불쑥 나타났다가 ‘펭빠’하고 쿨하게 퇴장하는 펭수. 사람들이 펭수에게 열광하는건, 무엇보다 ‘나는 나’라는 ‘민담적’ 행동방식 때문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디즈니사의 ‘알라딘’. 민담 속 인물들은 종종 만화영화 주인공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 민담형 인간 / 신동흔 지음／한겨레출판

세계 구비설화 전문가인 저자
딴마음 품지 않고 거침 없는
‘민담형 인간’대표로 펭수 꼽아

신화 영웅·소설 캐릭터와 다른
‘트릭스터’란 개념으로 구체화
삶의 과정 자체를 즐기기 강조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담의 마무리는 대개 이런 식이다.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 “정말 그랬을까?” “어떻게 그랬지?”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에 의심을 품었고, 글이 아닌 입으로 전해져온 이 ‘불완전한 이야기’에 종종 의혹을 제기하곤 했다.

구비설화 전문가 신동흔 교수의 책 ‘민담형 인간’은 이에 대한 ‘답’이다. 민담 속 주인공들이 오래오래 행복했던 건 ‘그들’이 “뒤에 몰래 딴마음을 감춰두지 않으며”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자기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 교수는 이를 민담형 캐릭터, ‘민담형 인간’이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또 의문이 든다. 잘 살려면, ‘반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적당히 마음을 감추고, 문제가 생기면 나서지 말고, 현재의 욕망을 참아내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해가 안 되면 ‘펭수’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 아하, ‘감’을 잡고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왜 우리는 ‘민담형 인간’에 주목하는가.

30여 년간 세계 각지의 민담 속 주인공들을 연구해온 저자는 ‘민담형 인간’의 최신 버전으로 EBS에서 제작한 캐릭터 펭수를 예로 든다. 남극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가서, 요들송을 배운 펭수는 인천 앞바다까지 헤엄쳐 왔다. ‘남극 펭’(이런 한자는 없다)에 빼어날 수(秀)를 쓰며 나이는 10세, 직업은 EBS 연습생이다. 황당무계한 설정부터 매우 ‘민담적’이다. 인생 뭐 있냐는 식으로 요들송, 랩, 미술, 정부 요직 등 무엇에든 좌충우돌로 들이대는데, 신기하게도 그게 통한다. 펭수의 행동 방식을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나다!’라는 것이다. 펭수의 인기 요인은 2가지인데, 하나는 일단 재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침없는 언행이 심리적 해방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민담식 서사의 특징이자 힘, 매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펭수를 통해 기초 지식을 쌓았으니, 구비전승이라는 측면에서 진짜 민담 속 캐릭터를 만나보자. 저자는 ‘민담형 인간’을 ‘트릭스터(trickster)’라는 개념으로 구체화시킨다. 신화의 특징적 캐릭터가 ‘영웅’이고, 소설의 두드러진 캐릭터가 ‘문제적 개인’이라면, 민담에는 ‘트릭스터’가 있다는 것이다.

트릭스터는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에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행동파 인물로, 양의(兩意)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대표적인 트릭스터로 그림 형제 민담 중 ‘용감한 꼬마 재봉사’와 19세기 경주에 실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하명물 정만서’를 내세운다.

꼬마 재봉사는 파리 7마리를 천 조각으로 한 방에 처치한 뒤 ‘어머, 이런 일은 널리 알려야 해!’라며 길을 떠나 거인을 물리치고,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정만서는 1원에 변소를 빌린 뒤, 주인에게 10원을 받아내는 재주도 부리고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는 가족들에게는 “죽어봐야 알지 아직 안 죽어서 모르겠다”며 눙치는 괴짜다. “어떤 상황에서든 걱정이나 고민 없이 제 한 몸을 믿고 쭉쭉 움직여 나가면서 부딪히는 것들을 무엇이든 툭툭 펴내는 두 사람, 어김없이 같은 종족이다”라고 설명한다.

얼핏 꼬마 재봉사는 신화 속 영웅, 정만서는 사기꾼의 전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민담 속 트릭스터는 대부분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이하’의 인물이며, ‘세상을 구하겠다’는 비장함 없이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행한다는 측면에서 ‘영웅’과 다르다. 따라서 저자는 ‘오래 행복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그 과정을 즐겼기에, 트릭스터의 삶 그 자체가 ‘성공’이라고 말한다.

또한 트릭스터는 “윤리학보다는 존재론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능력이나 도덕보다 ‘자기 삶’을 사는 주체적 태도를 강조한다. 한마디로 요즘 말로 하면 트릭스터는 ‘리스펙’ 혹은 ‘플렉스’라는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미친 존재감’의 인물들이다.

한데 삶은 민담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대부분 인간도 분열된 내면을 가진 ‘소설형 인간’이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책은 지금 우리에게 더더욱 트릭스터의 태도, 즉 민담형 인간들이 보여주는 ‘대담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고난에 맞서는 영웅, 내면에 갇혀 고뇌하는 개인, 위기에 대처하는 ‘보통 사람’. 고르라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저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면 민담형 인간이 되기를 ‘노력’하라고 권한다. 거기에 인생의 색깔을 완전히 바꿔 줄 모멘텀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예기치 않은 극적인 인생 역전! 이거야말로 민담의 전문 영역이다.” 312쪽, 1만6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