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학습과 운동 함께하는 교육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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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美 유명 대학들 스포츠도 강해
매켄로, 타이거 우즈, 미셸 위
서울대 출신은 이용수 황보관

초등 고학년 되면 스포츠 뒷전
오로지 암기 지식에 몰입 경향
體·德·知로 순서 바꿔야 할 때

어느덧 환갑을 맞았다. ‘오래 살다 보면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는 영국 작가 버나드 G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대학 3학년이던 1981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2번, 2시간씩은 반드시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40년 동안 필자가 근사적(近似的)으로라도 지킨, 몇 안 되는 약속 가운데 하나가 됐다.

10여 년 전 대만계 미국인인 제러미 린은 미국 동부의 명문 하버드대를 대학 농구의 신데렐라로 만들었다. 아시아 출신은 농구를 못한다는 편견에 희생돼 린은 운동장학금을 받지 못한 채 하버드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 린은 미국 프로농구(NBA) 뉴욕 닉스의 선수로 출전해 2011∼2012시즌 ‘미친 린(Lin sanity)’ 돌풍을 일으키며 ‘농구 못하는 아시아인’이라는 편견에 도전했다. 2013년 ‘린새니티’(감독 에번 렁)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됐다. 미국 서부에는 실리콘밸리를 탄생시킨 스탠퍼드대가 있다. 스탠퍼드는 교육과 연구뿐 아니라 운동에서도 앞서간다. 잘 알려진 타이거 우즈나 미셸 위가 이 대학 출신 골프 선수다. 1980년대 세계 테니스를 주름잡은 존 매켄로 역시 이 대학을 다녔다.

우리 서울대는 어떤가. 야구부의 연패 기록은 널리 알려져 있다. 축구부는 어떤가. 축구부는 서울대 설립과 함께 1946년에 창단돼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1970∼1980년대에는 이용수, 강신우, 황보관 등 국가대표급 선수를 배출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던 이용수는 거스 히딩크 감독 영입을 성공시켰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이렇게 싹텄다. 강신우는 선수 생활을 마친 뒤 모교 축구부 감독으로 무료 봉사를 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황보관은 시속 110㎞를 넘는 초고속 ‘캐넌 포’를 터뜨렸다. 우리 국민에게 잠시나마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의 희망을 심어줬다.

현재 서울대 축구부는 모두 17명의 선수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선수 출신은 단 3명뿐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는 대학축구 리그인 U리그에 참가한다. 전원 엘리트 선수로 구성된 다른 대학 축구부를 상대로 서울대 축구부는 힘겨운 승부를 펼쳐 오고 있다. 최근 5년간의 전적을 보면 64전 1승 9무 54패로 참담하다. 그래도 2010년 첫 승을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 6승이나 챙겼다. 야구부에는 없는 기록이다. 코치진으로는 거의 무급(無給)으로 서울대와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엘리트 선수 출신 이인성 감독과 곽창훈 코치가 전부다. 대학이 축구부에 지원하는 예산은 연간 100만 원을 겨우 웃돈다. 선수단의 사흘 식사비도 안 된다. 그러니 간간이 1승씩이라도 올리는 게 기적이다.

이전에는 교육에 있어 우선순위가 ‘지덕체(知德體)’ 순이었다. 체력이 국력이라더니 언젠가부터 ‘지덕체’가 ‘체덕지’로 변했다. 몸이 튼튼해야 인격도 함양하고 지식도 쌓을 수 있으니 이제 순위가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국가적으로 엘리트 스포츠 정책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국민 모두 운동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다. 운동은 극소수 엘리트 선수에게 맡기고 대다수 국민은 뒷짐 지고 응원만 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 학생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거치면서 수영·축구·농구·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공부에 방해된다며 운동을 접는다. 너무 일찍 운동에서 손을 뗀다. 잠도 안 자고 운동도 안 해서 저축한 시간으로 낮이고 밤이고 학교와 학원 공부에 매달린다. 덕과 체를 희생하면서 알량한 지식만 쌓는다. 그렇지만 달달 외운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제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대와 교육부의 예산 집행 우선순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체덕지’가 옳은 순서다. 우리 청소년과 젊은이의 정신 및 육체 건강부터 지켜야 한다. 운동과 학습이 함께 가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서울대 축구부는 지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도 끊임없이 도전한다. 학습과 운동 병행이 가능함을 증명해 내려고 한다. 서울대의 변화를 통한 우리 교육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서울대 축구부는 오늘도 뛰고 또 뛴다. 포기하지 않는 꼴찌의 실험에 격려의 박수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