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진정한 ‘정기연주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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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제123회… 제124회 정기연주회
청중은 관심없는 행정적 숫자

대전시향·KBS교향악 정기연주회
‘마스터스 시리즈’로 명칭 바꿔

거장의 음악 연주한다는 의미로
연주력을 최대 발휘함 알려줘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1945년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에서 시작된다. 일본은 1929년 도쿄(東京)필하모닉이 정규 관현악단으로 출범했다. 일본이 서양 문명을 일찍 받아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의 출발도 우리보다 30년쯤 앞선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출범 당시에는 일본 오케스트라의 운영 체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1세대 음악 선구자들이 주도한 클래식 음악의 전파는 70여 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세계가 인정하는 놀라운 실적이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성의 지고(至高)함에 뿌듯함이 넘친다. 이렇듯, 세계 주요 무대에서 한국 음악가를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세계 톱 연주자와 오케스트라들의 순회공연에서 한국을 로드맵에 포함시키는 일도 자연스럽다.

한편, 우리나라의 서양음악은 하드웨어보다는 인적자원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의 팽창이 먼저 성장했다. 그로 인해 질 좋고 풍성한 연주자 구성이 가능했다. 나아가, 이들을 수용하는 정규 오케스트라가 꾸준히 생겨나면서 시·도민들에게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고무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추정하기로는 40여 개의 공립 오케스트라와 60여 개의 민간 오케스트라 등 모두 100여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일 양국에서 연주를 경험하면서 발견한 흥미 있는 점을 살펴본다. 70여 년 전에 어렵사리 틀을 준비해 출범한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주요 연주회 타이틀은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어색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제는 행정적 용어를 관객에게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걸맞은 이름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연주회와 관련된 용어 가운데서 우리만을 위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많은 오케스트라가 ‘제○○○회 정기연주회’라는 타이틀을 포스터와 프로그램 등에 쓰고 있다. 그러면서 영어로 ‘레귤러 콘서트(Regular Concert)’라고 병기한다. 예술감독과 지휘자, 협연자, 그리고 단원들도 외국 국적인들을 영입하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의 국제화 현실에서 ‘레귤러 콘서트’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다.

일본에 가서 연주할 때 보니 그들의 포스터에도 ‘제○○○회 정기연주회’라고 표기돼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1년 내내 매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것은,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오케스트라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정기연주회’라는 타이틀을 쓰는 것은 어색하다. 게다가 국내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풀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중은 그들이 참석하는 연주회가 제123회 정기연주회든 제124회 정기연주회든 횟수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숫자를 주목해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

오히려, 어떤 지휘자가 어떤 작품을, 어떤 협연자가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청중은 이를 기준으로 티켓을 구입해 연주회장을 찾는 것이다. 숫자로 나타내는 ‘제○○○회 연주’는 행정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일본의 오케스트라들은 미국 오케스트라들의 1년 단위 연주 시리즈인 ‘서브스크립션 콘서트(Subscription Concerts)’를 정기연주회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레귤러 콘서트’로 쉽게 변형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브스크립션 콘서트는 내년 시즌의 연주 티켓을 미리 판매하는 예약제 콘서트를 의미한다. 미국의 오케스트라는 시즌 시작 6개월 전에 이미 다음 시즌을 발표하고, 모든 연주를 패키지로 묶어 시즌 패스를 판매한다. 시즌 패스를 구입하면 시즌 내내 본인이 원하는 지정 좌석에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이를 엄밀하게 해석하면 ‘정기권 예약제 콘서트’ 정도가 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오케스트라들이 오랜 전통으로 이어온 콘서트 포맷이다. 여름 휴가철 2∼3개월을 제외하고 연중 계속되는 연주 형태다. 한국과 일본의 오케스트라들은 이런 유형의 연주를 매주 하기엔 클래식 음악 인프라가 그 수준에 못 미쳐 아직은 감당하기 어렵다.

대전시향과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일하면서 정기연주회라는 이름을 ‘마스터스 시리즈’로 바꿨다. 연주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통 클래식 프로그램이다. 대가들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의미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음악의 본질은 아름답게 보존하고 가꿔야 한다. 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방법은 시대에 걸맞게 바꿔 미래 고객인 신세대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한 점은, 클래식 음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클래식 음악 산업의 변화 속도가 다른 첨단 산업에 뒤처진 것을 하루바삐 따라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3월 중순이다. 내년도 마스터스를 계획하느라 매우 바쁜 요즘이다. 매주 1회 이상 연주할 수 있는 진정한 ‘정기연주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