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5월 소나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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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내촌목공소 대표

韓日中 모두 애호하는 소나무
국경 없이 연결된 문화의 고리

‘동이족’ 범위는 3국 아우르고
DNA도 밀접할 만큼 가까워

팬데믹에 아시아人 증오 테러
‘소나무 커뮤니티’로 뭉쳤으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나의 소나무 이야기. 30여 년 전, 한·중 수교 직후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로 향했다. 생애 첫 중국 여행. 베이징(北京)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에서도, 교외 간선에서도 연이은 포플러가 정다웠다. 갓 심은 가로수는 휘청이며 줄지어 있었고, 칭다오 외곽 누런 언덕배기에 뒤틀리고 작은 나무가 띄엄띄엄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였다.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있을 데가 아닌데. 놀라운 광경은 또 나타났다. 소나무 옆 야트막한 곳에 무덤 몇 기가 보였다. 묘비명과 비석의 한자, 순서까지도 고향 선산의 그것과 같지 않은가. 지묘(之墓), 신위(神位), 처사(處士)…. 집안 제사 예법이 토씨까지도 그대로 중국에서 온 것을 실감했다. 맑은 날 아침에는 충남 당진의 닭울음 소리도 들린다는 산둥은 공자의 출생지다.

훗날 자유롭게 중국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동이족이다. 내가 역사에서 배운 동이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 한(韓)민족이었다. 중원의 한족(漢族)은 동서남북 이민족을 각각 이(夷)·융(戎)·만(蠻)·적(狄)으로 불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예로부터 동이족은 흰옷을 입고 가무를 즐기며 예의를 숭상한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 정사 기록의 흰옷·가무·예의는 자못 우리 자긍심으로, 역사와 문학에서 너나없이 얼마나 많이 인용했던가. 그런데 베이징과 지난(濟南)박물관에서 동이는 원래 중국 동북지역 산둥과 랴오둥(遼東) 사람을 부르던 말임을 알았다. 충격이었다. 후대로 오며 동이족의 강역은 만주, 한반도, 일본으로 둘레가 확장됐다. 중국 동북지역과 만주에다 일본까지도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라니.

이후 소나무는 일본에서도 내 시야에 등장했다. 중국에 이은 일본의 소나무는 단군의 후손이 가졌던 고정관념과 지식을 아예 전복시켰다. 일본은 삼나무(杉·스기)와 편백나무(檜·히노키)의 나라다. 민가는 삼나무, 신사와 궁궐은 편백나무로 건축한다. 그런데 도쿄(東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입구와 일본 우두머리 신사 이세(伊勢)신궁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게다가 도쿄 중심 황궁 앞의 드넓은 소나무 정원. 잘못 봤을까. 소나무 잎의 침을 살폈다. 침이 둘씩 맺힌 이엽송, 우리 소나무다. 일본 여행이 잦아지며 나는 더 깊숙이 소나무 광경과 마주했다. 교토(京都) 니조(二條)성의 긴 복도를 돌고 도는데 환한 금빛 병풍이 나타났다. 그림 속 인물은 도쿠가와(德川) 가문의 쇼군(將軍)일 터다. 병풍은 비스듬히 가지가 처진 소나무로 꽉 차 있었고 오사카(大阪)성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병풍도 마찬가지다. 소나무 그림이다.

‘왜, 우리 한민족의 소나무가 오사카의 간바쿠(關白)와 교토 쇼군이 머무는 내밀한 방의 병풍 그림으로 있는가?’ 가만있자, 목조 건축 중 세상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호류지(法隆寺) 법당의 소나무 벽화도 고구려 담징 대사의 작업이다. 일컬어 일본의 마지막 궁궐 목수라는 니시오카 쓰네카즈(西岡常一) 대목장은 “편백나무가 천 년 건축을 만들었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건축재로 쓰지 않았다. 뒤틀리는 소나무는 재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또렷이 구술을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 호류지 서원 가람은 물론이고 야스쿠니 신사와 이세신궁 또한 편백나무 건축이다. 이러한데 신사 입구와 황궁 앞에 소나무를 심었다.

나는 일본 전통 문화유산 경내에 있는 소나무 풍경에서 그들의 노스탤지어를 읽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우리 건국설화, 해모수의 손자 유리왕은 부여에서 출발했다. 지금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이다. “아들아, 남쪽으로 가 일곱 모난 돌 위의 소나무를 찾아 아버지를 만나라.”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를 찾아 만주 대평원을 거쳐 남녘 길을 만들었다. 부여에서 고구려와 백제, 현해탄 건너 야마토(大和·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 왜에까지. 우리는 이 서사를 뜬금없는 이야기, 그저 신화의 한 토막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제 소나무를 증표로 남으로 이동한 민족 이야기는 유전자(DNA) 혈통검사로 세세히 밝혀졌다. 국가 구성원의 민족 비율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의 단일민족,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일본의 만세일계(萬世一系)는 실험실 현미경과 고고학 앞에서 허구가 됐으니, 아름다워라 과학. 우리 한국인의 유전자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여진족), 또 야마토 일본인과 가장 가깝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테러가 잦다고 한다. 뉴욕에서는 한국계·중국계·일본계가 함께 자경단을 조직해 아시아계 노인들 호위에 나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중·일 커뮤니티가 테러 앞에 하나가 됐다. 내친걸음에 소나무 커뮤니티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지구에는 120여 종의 소나무가 있는데, 침이 두 개 달린 우리 소나무 학명은 피누스 덴시플로라(Pinus densiflora). 한·중·일에 분포한다. 세 나라는 소나무를 한자 이름 송(松), 공경하는 나무라 부른다. 소나무를 공경하는 3국의 5월은 모두 가정, 가족의 달이다. 감성까지도 이렇게 같을까. 늘 푸른 소나무는 국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