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베트남전 참전했던 아저씨에게 무슨일이…

용맹호 | 권윤덕 지음 | 사계절

2000년 7월 6일에 방영된 100분 토론의 주제가 무엇이었기에 차량 정비기사 용맹호씨는 평온하게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현듯 리모컨을 집어 던졌을까. 이 그림책은 그 대답과 용맹호씨의 관계를 다룬다. 용맹호씨는 경쾌하고 씩씩한 사나이다. 울창한 수풀이 그려진 초록 셔츠를 입고 날마다 정비소에 출근한다. 그런데 하루 일곱 대의 자동차를 척척 수리해내는 용맹호씨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고민이 있다. 눈을 감으면 키 큰 잎사귀들이 버석거리는 밀림 사이로 왕지네가 기어 나오고 거머리가 흔들거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는 하루도 편안히 잠든 적이 없다.

작가는 용맹했던 한 호랑이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한다. 용맹호씨는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가 귀가 세 개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새로 생긴 귀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재생한다. 출근길에 어린 여자아이를 보거나 아기를 품에 안은 아기엄마와 마주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식은땀이 흐르고 균형을 잃거나 넘어지기도 한다. 용맹호씨의 몸에는 새로운 귀에 이어서 자꾸만 세 번째 무엇이 생겨난다. 일상은 무너지고 점점 어지러운 감각 속을 헤맨다. 자신 때문에 사라진 사람들의 몸의 조각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밀림처럼 용맹호씨를 에워싼다.

1964년 8월 7일,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습격한다. 국지전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전면전으로 확대됐고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전장이 넓어진다. 한국에서는 연인원 32만 명이 이 전쟁에 파병됐다. 용맹호씨도 그곳에 있었던 한 사람이다. 권윤덕 작가는 십여 년간 우리 근현대사의 난폭한 심연을 다룬 ‘꽃할머니’ ‘나무도장’ ‘씩스틴’을 발표했다. 그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똑바로 말하는 작업에서 붓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작가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혼미한 작업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용맹호’에 이르러서 그림책이라는 예술 장르가 폭력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한 드문 경지를 보여준다. 반드시 무엇을 그려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하나의 역사로 남을 작품이다. 파병기념 사진에서 용맹호씨를 둘러싼 아치와 용맹호씨가 거리에서 마주쳤던 여자 어린이의 옷은 같은 무늬다. 우리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 많다는 사실은 독자로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2쪽, 1만7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