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2022, 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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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작가

팬데믹 직전에 말라위 갔다가
고아들 빈곤·질병 고통에 충격

우크라이나 전쟁 결국 현실로
피란길 어린아이 죽음의 공포

핵전쟁 그림자까지 감지되는데
부디 더 이상 확전은 없었으면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확산(팬데믹) 직전,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말라위. 말라위에 갈 거냐는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땅, 아프리카. 나는 오래전부터 그 원시의 자연을 직접 보고 싶었고, 거친 야생의 동물들도 확인하고 싶었다. 말라위에 갈 거냐는 말을 들을 때까지 나는 말라위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말라위라는 나라가 있었나?

말라위는, 내가 알고 있던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인 잠비아와 모잠비크와 탄자니아와 이웃해 있는, 그러니까 아프리카 남쪽 내륙에 자리한 나라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빈곤한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 말라위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상상 속의 아프리카와는 대조적이었다. 그 푸른 초원이라니!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설산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희고 붉은 꽃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는 결이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 그 반전의 세상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왜 굶주림에 시달릴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조금만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빈곤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왜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노력보다는 원조에만 기대어 살아가지 않나 하는 고약한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한 열흘, 그곳에 묵다 보니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들의 무력감을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말라위뿐일까. 말라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아프리카 대다수의 나라가 안고 있는 난제이며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말라위에 간 건 일 때문이었다.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과 관련한 일로 이렇게 저렇게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한국과 일본에 본부를 둔 복지재단 책임자와 함께 아프리카 나라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러 떠난 길이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가운데서도 말라위는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부모를 잃은 고아가 많았고, 영아사망률도 높은 축에 들었다. 어느 곳인들 그러지 않겠는가마는, 그곳 말라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한순간 퍼부은 스콜(squall·열대지방의 세찬 소나기)로 100여 명이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환절기의 감기처럼 말라리아를 앓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지역이 바로 그곳 말라위였다. 그곳에서의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차별이 없었다. 어린아이건, 성인이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여차하면 질병에 발목을 잡혔고 그런 만큼 그들은 죽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은 늘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응시했고, 그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한데 2022년 이 봄날에 왜 갑자기 말라위가 생각났을까, 느닷없고 뜬금없이.

아마도 죽음의 공포가 포탄처럼 터지는 우크라이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울며 피란길에 나섰던 어린아이의 지난한 행로가 자연스럽게 말라위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죽음과 공생하면서도 쾌활하고 순진무구함을 잃지 않던 말라위 아이들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염없이 울며 길을 걷던 그 우크라이나 소년은 다르면서도 어딘지 같아 보였고, 같아 보이면서도 또 달라 보였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쟁 이야기가 뜬소문처럼 떠다닐 때도 정말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전쟁이 일어날까? 전쟁은 공멸이나 다름없는데, 어리석지 않고서야 그 자멸과 공멸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까 회의했고, 또 상식을 믿었다. 한데, 그런 기대와 낙관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하던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고, 공포는 증폭되었다.

여러 종류의 통신망을 타고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우크라이나 상황이 참혹하고 안타깝다.

피란길을 떠나는 가족과 전쟁터로 향해야 하는 가장과의 이별은, 더 이상 옛날이야기거나 영화 속에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실제 현실로 마주하는 비극이자 슬픔이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듯 전해지는 화면 속에서 백발의 할머니와 아직 앳된 얼굴의 소년들이 총을 든 채 항전을 다짐하는 표정과 언사들이 비장하기만 하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결의와 각오가 죽음보다도 더 의연하고 숙연하다.

우리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를 내놓던 시절, 그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까닭에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바라보는 심경이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직 우리는 휴전 상태가 아닌가! 이 전쟁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나라 안팎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이 암울하고 섬뜩하기만 하다.

인간이 인간을 살상하는 이 야만과 폭력의 시대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한데 그런 바람과 기대를 조롱하듯 어른거리는 핵전쟁의 그림자를 감지해야 했다. 세상에 핵전쟁이라니…. 지겹기만 하던 감염병 팬데믹의 종말을 조심스럽게 예고하는 이 봄에 다시 시작된 죽음의 행렬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제발, 부디, 더 이상의 확전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