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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22년 05월 16일(月)
“늘 젊은 관객 상대하는 연극… 내가 늙었다고 달라지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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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종로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호재 배우가 화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연극 ‘질투’에서 화분 사업을 하는 완규 역을 맡았다. 신창섭 기자

■ ‘무대인생 60년’ 배우 이호재

‘내가 할 일은 연극’의지로 버텨
TV와 달리 영상기록 없는 연극
관객을 상대로 한 외로움 싸움

연극 떠난 관객 못 잡은 내 탓
사람 만나 얘기하는 게 낙인데
어느새 주위엔 연극인만 남아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킨다고 모두가 ‘어른’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려 ‘관객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을 60년간 해온 연극배우 이호재는 연극판에서 ‘어른’으로, 또 ‘대가’로 인정받는다. 연기만 잘해서도 아니다. 이호재는 예전 관객들이 대학로를 떠난 데에 미안해하고, 연극배우들이 더러 돈을 좇아 연극판을 떠나가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연극 지킴이’로 남았다. “연극배우는 공연하는 그 순간만 기억된다”며 배우 인생의 마지막을 고민하고 있다는 비장함도 잠시, “연습하고 술 한잔할 건데 같이 가자”고 제안할 땐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무대에선 진지하되 날 서 있지 않고, 현실에선 따스하되 날카로운 배우 이호재를 10일 만났다. 마침 이날은 그의 82번째 생일이었다.

―60년 동안 연극 무대를 묵묵히 지켜온 동력은.

“연극배우가 연극을 지키지 뭘 지키나. 연극을 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좋게 말하면 연극 지킴이다.”

―방송과 연극은 수익 차이가 클 텐데 흔들리진 않았나.

“돈을 많이 번다고 하루 세 끼 먹을 걸 네 끼, 다섯 끼 먹는 건 아니지 않나.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만 (방송을)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낫다.”

―연극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무대에 선 지 60년이 됐는데 무슨 계기를 묻나. 과거를 회상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마무리 생각은 이른 것 아닌가.

“결코 이르지 않다. 연극인들은 말년이 행복하지 못했다. 김동원·장민호 선생님 등 모두 생전엔 존경받았는데 이제는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배우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슬그머니 스러져서 없어진다. 보통은 다 잊히고 만다.”

―스러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TV 드라마나 영화는 영상물이 남아 있지만, 연극은 그런 게 없다. 연극배우는 공연하는 그 순간만 기억된다. 카메라로 아무리 찍어도 그 순간은 절대 못 담는다. 물론 그 순간을 위해서 계속 연극을 하는 거지만….”

―60년의 세월 동안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는가.

“똑같다. 내가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 만난 관객 연령대가 지금 관객 연령대와 같다. 나는 나이를 먹었지만, 관객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 늘 젊은 관객들과 상대해야 하니까 내가 늙었다고 달라지면 안 된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관객이 없어 아쉬울 것 같다.

“관객과 같이 늙어가지 못한 건 내 잘못이다. 연극을 떠난 그 사람들을 잡지 못한 내 책임이 크다.”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연극판의 원로로서 의무와 책임을 논하는 그가 어디서 삶의 재미를 느낄지 문득 궁금해졌다.

―삶의 낙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하는 게 낙이다. 술도 한잔씩 하고.(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친구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주위엔 연극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마저도 젊은 사람들과는 얘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외로움이 느껴진다.

“연극은 어차피 외로운 일이다. 무대 위에 오른 배우들끼리 연극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상대는 관객이다. 그런 점에서 연극은 외로운 싸움이다.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자와 동시에) 지금 상대는 독자인 거지.”

공연 연습을 마친 후 저녁 자리엔 이번 공연에서 카메오 출연을 하기로 한 후배들을 포함해 20명이 넘는 연극인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코로나19 이후 대학로에서 이만큼 사람이 모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가 “이 선생님은 연기의 표상”이라며 “선생님이 살아야 우리가 삽니다”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재는 묵묵히 듣다가 술잔을 높이 들며 “자, 들자”고 외쳤고, 그 순간 모두는 하나가 됐다.


권해효 · 이대연 · 정동환… 동료 연극인 ‘카메오만 20명’
■ 60년맞이 연극 ‘질투’ 27일부터


배우 이호재의 연기 인생 60년 맞이 연극 ‘질투’(이만희 작가, 최용훈 연출)엔 ‘연극 지킴이’ 이호재를 따르는 동료 연극인 20명이 카메오로 나선다. 연출을 맡은 최용훈은 “이호재 선생님의 60주년을 기념하는 일종의 축제이자 헌사로 봐달라”고 소개했다.

연극은 이혼한 완규(이호재)와 친구 춘삼(남명렬), 그리고 동네 약사 수정(남기애)의 황혼 로맨스 소동극이다. 완규는 춘삼과 수정의 관계를 오해해 질투를 느끼고, 수정은 완규의 어떤 점을 오해하고 “단둘이 여행 가자”고 제안한다.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 재밌다”는 이호재의 귀띔처럼 10일 공연 연습 과정에선 여러 번 폭소가 터졌다. 연습은 각 장을 따로 반복하지 않고, 실제 공연처럼 한 번에 쭉 진행됐다. 남기애 배우는 “선생님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선호해 반복하는 건 싫어하신다”고 전했다.

이번 연극엔 카메오가 20명이나 된다. 권해효·김재건·이남희·이대연·장연익·정동환 등 후배 배우뿐 아니라 연출가 박정희, 성우 송도순 등 각양각색 ‘이호재 사단’이 모였다. 오는 27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다음 달 5일까지 회차별로 2~3명씩 출연한다. 카메오에 따라 설정이 달라져 골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송도순은 아들인 배우 박준혁과 함께 출연해 연상연하 커플인 듯한 느낌을 조성하며 웃음을 안긴다. 극 속 완규는 이호재와 닮았다. 이호재의 휘문고 후배로 수차례 호흡을 맞췄던 이만희 작가는 통풍에 걸린 것과 ‘빨간 소주’만 먹는 이호재의 특성을 완규에게 집어넣었다. 완규를 상징하는 낱말인 ‘노빠꾸’ 역시 60년 동안 꿋꿋이 연극판을 지킨 배우 이호재에 오버랩된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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