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의대졸업생 수 OECD 꼴찌 수준… 정부, 내년 4월까지 증원 규모 확정[10문10답]

  • 문화일보
  • 입력 2023-10-24 08:58
  • 업데이트 2023-10-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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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국내 의대 정원, 18년째 그대로
인구 비슷한 영국은 3배 더 많아
대입 ‘의대 광풍’ 현상 심화되고
이공계 → 의대 중도이탈자 속출

돈벌이 쉬운 科에만 의사 쏠리며
수도권 외 지역 의료 공백 커져

국민 67% “의대정원 확대 찬성”
의료계 “수가 인상 등 보상 확대
필수의료 기피현상부터 완화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방침을 공식화했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2000년 이후 정부가 두 차례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시도했지만 의사들의 반발 탓에 백지화됐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20% 이상)를 앞두고 의료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줄어드는데 수술해야 할 환자는 증가하고 있다. 의료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지방 의료 공백과 필수 의료 인력 부족 현상을 심화시켰다. 의사 수가 부족해지자 의사 몸값부터 올라 병원 원가와 수가가 뛰면서 의료비는 크게 늘었다. 한국의 경상의료비(1년간 전 국민 보건의료 지출 총액)는 2000년 25조 원에서 2022년 209조 원으로 8배로 급증했다. 반면 의료의 질은 떨어졌다. 그 결과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은 일상화됐다. 최대 관심사는 증원 규모다. 최근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증원 규모와 방식 등 구체적인 방안은 대학들이 내년 4월 모집 요강을 확정 짓기 전 결정된다. 이를 두고 정부와 의사단체 간 이견도 커지고 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쟁점과 당위성, 논란 등을 살펴봤다.

1. 의대 정원 확대가 추진되는 이유는

의대 정원은 18년째 동결된 반면 인구 구조가 가파르게 고령화되면서 의료 수요는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가입국 전체 평균(3.7명)의 70% 수준이다. 매년 새로 배출되는 의사 수도 OECD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 수는 7.26명으로 OECD 39개국 중 38위에 불과했다. 반면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평균(5.9회)보다 2.5배가량 많다. 의사가 부족한 와중에 일하기 편하고 돈벌이가 쉬운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으로 의사들이 쏠리면서 필수 의료는 붕괴됐다. 생명과 직결된 심장과 뇌를 수술하는 의사는 멸종 위기다. 의료계에 따르면 내년에 은퇴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32명으로 새로 배출되는 전문의(21명)보다 많아진다. 국내 소아심장 수술 전문의는 23명에 불과하다. 뇌혈관 질환자도 늘었지만 개두술 숙련의는 총 133명이다.

2. 지역 격차는 어느 정도 심각한가

의료 수요는 늘었지만 의사 수는 부족해지면서 정주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 의료 공백을 심화시켰다. 어렵고 힘든 수술을 하는 필수 의료 분야일수록 의사 고령화는 심해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전문의들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흉부외과와 신경외과 전문의의 60∼70%는 수도권에 있다. 소아 중증 질환을 치료하는 소아암과 소아흉부외과 전문의의 각각 60%, 78%는 수도권에 쏠려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치료 가능 사망자’(인구 10만 명당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한 환자 수)는 서울이 38.6명이지만 강원은 49.6명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 ‘빅5’ 병원을 찾은 비수도권 환자도 71만3284명으로 2013년보다 42.5% 늘었다.

필수 의료가 무너지면서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등 비정상적 상황은 일상화됐다. 소아과는 최근 5년간(2018∼2022년) 개업한 곳(519곳)보다 폐업한 곳(550곳)이 더 많다.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도 2012년 739곳에서 2022년 470곳으로 36.4% 감소했다.

3. 의과대학 입시 광풍도 빚어졌는데

대학 입시에서의 ‘의대 광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의사가 되기만 하면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의대로 쏠리는 기형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방 의대 정시 합격선이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의 자연계열 합격선보다 높아진 것도 확인됐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의대 정시모집에서 합격자의 상위 70% 성적(국어·수학·탐구영역 백분위 기준)이 가장 낮은 곳은 고신대 의예과로 95.3점인데, 이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95.2점)보다 높다. 이 때문에 의대 진학을 위해 학원에 ‘초등학생 의대 입시반’이 개설되고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학원에 등록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종로학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학부모 1085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85.8%는 자녀의 자연계 진학을, 이 중 53.5%는 특히 의학계열 진학을 희망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이공계 인재의 의대 유출은 심각한 수준이어서, 관련 학과를 다니다가 의대로 진학하기 위해 중도에 이탈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4. 18년째 의대 정원이 그대로인 이유는

국내 의대 정원은 2000년 기준 3507명이었지만 당시 정부가 의약 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4년에 걸쳐 약 10%(351명)를 감축했다. 이후 더 감축해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2000년 이후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은 두 차례 무산됐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이 감축된 지 12년 만인 2012년 약 500명 수준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 백지화됐다. 8년 후 2020년 문재인 정부는 매년 4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의료계가 전공의 파업과 동네 병·의원 집단 휴진,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등으로 강하게 맞서면서 코로나19 진료 공백 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종료 이후 의대 증원을 재논의하자면서 물러섰다.

5. 의사협회 등이 왜 반대하나

의사단체들은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17일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열고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 방침에 정면 반발했다. 의사단체들은 표면적으로 의사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 배출되는 의사들의 수가 늘어나도 인기 과목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지역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늘려도 졸업생들이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사 수가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의사단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은 크지 않다. 정치권에선 의사 수가 늘어날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고, 병원 경영에도 피해를 입기 때문에 의사단체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공식화하자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시도의사회장, 전공의협의회, 개원의협의회 등 의사단체 관계자들이 ‘의대 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6. 의대 정원은 어떻게 결정되나

의대 정원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관계부처인 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이 협의해 정하도록 돼 있다. 복지부가 의료인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총정원을 정하면 교육부는 이를 반영해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에 배분하는 식으로 이뤄져 왔다. 시행령에는 의료계와 별도의 협의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아, 정부가 의대 정원 규모를 의협과 논의해야 하는 법적인 근거는 없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해 당사자인 의협과 인력 증원을 논의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됐을 시기 정부가 의료계에 파업을 해제하는 조건으로 의대 정원을 함께 논의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어 최근 정원 확대 논의에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정부와 의협은 의대 정원 관련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기로 했다.

7. 정부는 의대 정원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나

의대 정원 확대는 복지부에서 논의 후 교육부 입시 계획을 통해 결정된다.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부터 확대된 정원을 반영케 할 계획이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내년 4월까지는 교육부에 증원안이 전달돼야 한다. 복지부는 의료계를 비롯해 환자단체 등 수요자 대표,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의대 증원 논의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보건의료 정책 심의 기구다. 정부는 다양한 수요자들의 의견이 의대 증원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현안협의체와 보정심에서 함께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1월부터 14차례에 걸쳐 의협과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대 정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의협과의 협의가 더딘 데다가, 의대 정원 논의를 의사단체와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커지자 논의의 틀을 보정심으로 넓혔다.

8. 해외는 의대 정원 어떤 추세인가

선진국들은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의대 정원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2015년부터 매년 1∼2%씩 의대 정원을 늘려온 독일은 올해 5000명 이상 증원한다. 독일 인구는 우리보다 1.6배 많지만, 의대 정원은 1만1752명으로 3.8배 많다. 올해만 늘려도 독일 의대 정원은 한국의 5배가량이 된다.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영국의 의대 정원은 2021년 9280명으로 전년 대비 2배로 증원했다. 한국의 3배 규모다. 영국도 고령화에 대비해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1만5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미국은 20년간 의대 정원을 38% 늘렸다. 미국에서는 한 해 의대 졸업생만 4만5000명이다. 일본의 의대 정원은 2007년부터 12년간 1700명을 늘려 현재 9330명이다.

9. 국민 여론은 어떤가

국민 여론은 의대 정원 확대에 긍정적이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2023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7.8%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국민 3명 중 2명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 것이다.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4.0%가 1000명 이상이라고 답했으며, 이를 포함해 국민 절반 이상이 의대 정원을 300∼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증원을 통해 수도권·대형 병원 쏠림과 ‘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대표되는 지역 필수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10. 필수 진료 확대, 적정 수가 보장 등 의대 증원 보완 대책은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필수 의료 기피 현상 해결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정부가 보완 대책을 내놨다. 수가 인상을 통한 경제적 보상을 강화하고 단순 의료 과실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에 추진하던 방안 외에 고난도·고위험 추가 보상, 저평가 항목 수가 인상, 소아 입원 보상 강화 등을 내년부터 차례로 시행한다. 집중치료실, 격리실, 무균치료실 등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고 병·의원급 신생아실, 모자동실 입원료는 50% 인상한다. 정부는 의사가 의료 분쟁에 대한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법을 개정해 올해 말부터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부담을 기존 70%에서 100%로 강화할 방침이다. 또 의료인 형사처벌특례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의료배상책임 보험 가입도 지원해 필수 의료 종사자의 민·형사상 부담을 완화한다.

권도경·정철순·인지현 기자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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