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의원은 지역 이익 우선
비례대표는 전국적 정책 관심
현 선거제 정치 양극화도 심화
지역구는 부정부패 시작될 우려
공천 투명화·국민 선택 반영해
지역구 줄이고 비례대표 늘려야
내년 4·10 총선에 출마할 예비후보자등록이 12월 12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 선거제도가 확정되지 않고 있다. 4년 전에도 이렇게 미루다가 선거 40여 일 전에야 선거구를 획정했다. 이러한 늑장은 사실상 선거운동을 시작한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다. 선거제도에는 많은 쟁점이 있으나 핵심은 비례대표 확대 여부다.
지금 국회 의석은 소선거구 253석, 비례대표 47석(15.7%)으로 구성된다. 소선거구제는 낙선자에게 던진 표, 즉 사표(死票)를 많이 발생시킨다. 사표가 많아지면 정당지지율과 국회 의석수에 괴리가 생긴다. 4년 전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포함, 79.4%의 지지를 받았으나 의석은 94.3%나 차지했다. 현행 선거제도는 양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며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중도 정당 등 다양한 국민 생각을 반영하는 세력이 국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자면 비례대표가 늘어야 한다.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할 이유는 많다. 지역구 의원은 국익보다 지역구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 언론은 예산국회 막바지의 밀실 ‘쪽지예산’을 비판하지만, 그 예산사업의 혜택을 보는 지역의 언론은 이를 미담으로 보도한다. 제18대 국회를 대상으로 분석한 전진영(2014)에 따르면, 지역구 의원은 특정 지역이 덕을 보는 법안을 주로 낸 반면, 비례대표는 전국 단위 정책을 주로 냈다고 한다.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해선 권역별로 대도시를 키워야 하는데, 군 단위에 일자리 창출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의원들의 지역구 지키기 활동 결과다.
또한, 지역구 의원은 의정 보고회 등 각종 지역구 운영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전체 지역구에 상주하는 보좌진 총원은 어림잡아 600명 정도인데, 선거철엔 당연히 대폭 늘어난다. 그 인건비도 국고에서 나간다. 지역구 관리엔 추가 자금이 든다. 지역구 내 각종 행사와 민원도 챙겨야 한다. 지역구는 부정부패의 시작이 될 우려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이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 과정이 불투명하고 내 손으로 직접 뽑는다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올 1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보여준다. 비례대표 축소·폐지(51.1%)가 현행 유지(31.1%)나 확대(17.9%)를 압도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비례대표 확대를 지지한다. 최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동으로 펴낸 연구에서 윤광일(2023)은 지역구 150석, 비례대표 150석을 제안했다. 지난 8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남인순)가 한국정치학회에 의뢰해 정치학·법학 전공자 4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을 보면 57%가 비례대표 확대를 지지했다. 왜 전문가(57%)와 국민(17.9%)의 찬성 의견이 크게 다를까? 일반 국민도 비례대표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정개특위가 지난 6월 시민 469명을 대상으로 공론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비례대표 확대에 부정적이던 사람도 정보를 얻고 토론을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비례대표 의석 확대 의견은 27%에 불과했으나, 숙의 토론 후에는 70%로 크게 늘었다. 반면, 비례대표 축소는 46%에서 10%로 낮아졌다. 국민도 비례대표의 장단점을 잘 알게 되면 결국 지지하게 된다는 게 시사점이다.
필자가 공동원장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싱크탱크 K정책플랫폼은 비례대표 확대에 찬반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두 학자를 초청해 어떤 합의를 도출하는지 알아봤다. 긴 논의 끝에 비례대표를 단기적으로는 소폭 확대하지만, 장기적으로 대폭 확대하자는 안에 합의를 봤다. 단, 비례대표 공천제도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바탕으로 국민적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을 전제로 했다.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는 비례대표 공천 과정을 투명화하고 국민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양당 지도부의 기득권을 약화시킨다. 더구나 그런 개혁으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 지지가 상승하면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꺼리는 거대 양당은 비례대표에 대한 국민 불신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양당은 비례대표 공천제도를 개혁하기 바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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