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풀고 갑시다[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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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섭 작곡가, 방송인·문학박사

근심·노여움을 푸는 것처럼
인생도 결국 잘 풀어가는 것

장례식에 간 우리 어머니들은
생전 한풀이하며 아픔 씻어내

여야·노사·사제 간 얽힌 매듭
의지 문제일 뿐 못 풀 일 없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갖가지 싱싱한 해물을 맛있게 대접받고는 남산만 해진 배를 안고 서울로 향했다. 10년도 더 넘게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와의 편한 이야기는 흔들의자보다도 좋았다. 또한, 어린 시절 물장구치고 놀다가 남의 밭 밀 이삭을 그슬려 먹던 이야기며 수박 서리하러 갔다가 혼난 이야기 등 전설 같은 이야기도 좋았다. 게다가 갓 잡아 올린 해물을 요리한 친구 부인의 손맛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갑자기 배가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분초를 다퉈 복통이 이어졌다. 맙소사! 도로 표지를 보니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가 앞으로 22㎞, 시간으로는 13분이란다.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고통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나는 ‘돌도 새끼를 깐다’라거나 ‘해파리도 디스코를 춘다’는 등 황당무계한 생각도 해 보고, 어릴 적에 부르던 동요 <새 신>을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하늘이 노랗구나 영양실조다~ ♬♪’로 노랫말을 바꾸어서 부르기도 하며 이를 악물고 견뎌, 드디어 휴게소에서 위험천만한 위기를 해결했다. 아니, 해결이라기보다는 고통에서 풀려났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 짧았던 화장실에서의 묵상.

‘푼다’는 것이 진실로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스님들이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하셨구나. 근심도 ‘푸는 것’이며, 아기를 낳는 것도 몸을 ‘푸는 것’이며, 회포도 ‘푸는 것’이며, 오해도 ‘푸는 것’이며, 노여움도 ‘푸는 것’이며, 피로도 ‘푸는 것’이며, 문제도 ‘푸는 것’이며, 근육도 ‘푸는 것’이며, 인생까지도 ‘푸는 것’이었구나!

나 어렸을 적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 저녁이 되자 낮에 들에 나갔던 아주머니들이 조문을 하러 빈소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가 생전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고∼오, 할매, 할매. 이래 일찍 가실 걸 얻다 쓰려고 그래 허리끈 바싹 졸라매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구경할 것도 하나도 못해 보고 그냥 이래 가셨능교? 아이고 불쌍한 할매, 아이고 불쌍해서 어찌할꼬.”

이렇게 생전 할머니를 추모하는 사설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한참을 울다 보면 “아이고 이 몹쓸 팔자도 그렇지. 나이 열일곱에 피죽도 한 그릇 못 얻어먹는 집안에 시집이라고 와갖고서는, 줄줄이 칠 남매나 낳아 놓고 조석으로 시어머니 시누이 등쌀에 칼바람을 맞고, 신랑이라고 있다는 게 허구한 날 술 퍼마시고, 살림이나 때려 부수고 노름이나 작작하며 서방질은 웬 말인가, 아이고 몹쓸 놈의 이내 팔자∼∼아이고”라며 이제는 자기 설움을 토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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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함께 조문하던 영이 엄마, 철수 엄마 할 것 없이, “아이고 내 설움은 또 얼마나 기막히나, 내가 도련님 장사한다 해갖고 황소까지 덜렁 팔아주고…”라는 등 저마다 자신의 한과 설움을 대성통곡과 함께 풀어낸다. 이렇게 아낙네들이 평소에 하지 못하는 가슴에 맺힌 설움을 풀어낼 즈음, 상주(喪主)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준다. 그러면 아낙네들의 울음소리는 더더욱 서럽게 메아리친다. 그렇다, 전통 상례에서 빈소(殯所)는 시집살이와 남존여비라는 유교적 통념에 억압받던 여성들의 한과 설움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어내던, 치유의 공간 역할도 했던 것이다. 상주도 아낙네들의 아픔을 스스로 풀라는 뜻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다.

조선 영조 때의 어사 박문수나 중국 송나라의 명판관 포증(包拯, 포청천)처럼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던 역사 속의 명관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풀어주는 세러피(Therapy) 의사들이었다. 장화와 홍련의 원한을 풀어 준 정동우, 아랑 낭자의 한을 풀어 준 밀양부사 역시 원한을 치유해 주는 세러피 의사 역할을 했다.

심지어는 죽음까지 축복으로 풀어내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는 죽은 사람을 위하여 노래하는 사람들과 춤추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우리의 전통 상례에는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았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수서(隋書)≫권 81, <동이전(東夷傳)> 고려(고구려)조 및 ≪삼국사기≫ ≪동경잡기≫,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상례에 ‘음악을 연주하고 춤과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상식으로 보면 망자에게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패륜이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상례에는 오히려 축제 같은 놀이를 통해, 상제들로 하여금 웃음과 신명을 갖게 하여 사별의 슬픔과 고통을 풀어주려는 슬기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인식은 죽음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사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서도 행복하게 잘 살아’ 하는 축원의 뜻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보내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례 역시 상제의 슬픔을 풀어주는 세러피의 하나이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꼬이고 얽힌 일도 많다 보니 송사(訟事)도 많다. 그러나 모든 송사가 법정으로 가는 건 아니다. 원고와 피고 간에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하여 합의에 이르게 함으로써, 분쟁을 평화적으로 풀어주는 조정절차 제도도 많이 활용된다.

이제 2023년도 한 달밖에 안 남았다. 우리 주변에는 풀어야 할 매듭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개인끼리 풀어야 할 문제로부터 정치판의 여야 간, 노동계의 노사 간, 교육계의 사제 간, 각종 단체 간, 언론은 물론 심지어 의료계까지 곳곳에 얽히고설킨 매듭들이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그러나 죽음조차 세러피로 풀어내는 우리의 지혜라면, 풀려는 의지가 없을 뿐이지 진정 풀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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