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첫 과제 ‘김건희 특검’ … 국민 납득할 ‘리스크 재발방지책’ 내놔야[허민의 정치카페]

  • 문화일보
  • 입력 2023-12-26 09:58
  • 업데이트 2024-01-0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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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의 정치카페 - 한동훈 與 비대위원장 취임

YS·DJ·盧 등 ‘하늘을 배신할’ 결단으로 역사 바꿔… 한동훈도 ‘파천황’의 해법 절박
권력 감시 ‘특별감찰관제’만으론 부족… 尹에 직언하고 국민이 공감할 ‘+α’ 방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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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공식 취임했다. 정치인 한동훈이 맞닥뜨릴 첫 시험대는 ‘김건희 특검법’ 대응이다. ‘김건희 리스크’의 재발 방지를 위한 파천황(破天荒)의 해법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동의를 끌어내고 국민의 공감을 사면 성공이지만, 기대 이하의 처신을 한다면 한동훈 비대위는 탄생과 더불어 휘청거릴 수도 있다.

◇파천황의 계보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들의 공통점은 파천황의 길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둔 어느 날 노무현 대선 후보의 최측근이 김정남 전 청와대 교문수석과 만났다. ‘대선에서 이길 비책’을 묻자 김정남이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하늘을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행동을 두 번은 해야 합니다.” 노무현의 최측근은 그 길로 노무현에게 달려가 김정남의 말을 전했다. 얼마 후 노무현은 정몽준과 대선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이념과 노선이 180도 달랐던, 아무도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두 후보의 극적인 단일화에 힘입어 노무현은 이회창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늘을 배신할 정도의 행동’은 노태우 때도 있었다. 1987년 대선을 앞뒀던 노태우는 국민적 요구였던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과거 목숨을 건 쿠데타 동지였던 대통령 전두환을 밟고 가는 ‘하늘을 배신할 정도의 행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킨 ‘1987 체제’의 초석이 됐다.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이자 한국 현대사의 두 거목, 김대중과 김영삼도 ‘하늘을 배신할 정도의 행동’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김영삼은 1990년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보수의 본진 속에 걸어 들어가 대권을 잡았고, 집권 후엔 군 하나회 척결 등 파격 행보를 해나갔다. 진보의 기수 김대중은 보수의 상징 김종필과 1997년 ‘DJP 연합’을 일궈냈고, 파천황의 선거동맹은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성사시켰다.

윤 대통령도 ‘하늘을 배신할 정도의 행동’을 경험한 일이 있다. 그는 2019년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대통령 문재인의 뜻을 거슬러, 온갖 외풍 속에서도 법무부 장관이던 조국의 불법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켜냈고, 이는 ‘0선’의 초짜 정치인의 집권 동력이 됐다.

◇정치인 한동훈

여권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비대위원장감으로 처음부터 ‘한동훈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당 내 판단도 비슷했다. 한동훈은 탁월한 정무 감각, 비상한 기억력과 설명력, 상대의 공세를 순식간에 무력화하는 전광석화 같은 대응력, 높은 인지도, 게다가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청년·여성층의 인기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정치 경험 부재와 중도 확장성 한계 우려에도 당내 여론 수집 과정에서 ‘한동훈 불가피론’이 굳어진 점은 그의 잠재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집권당 비대위원장 앞에 놓인 과제는 산더미 같다. 인사·조직·예산권 행사, 넉 달도 남지 않은 총선에 대비한 공천관리위원회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당내 혁신과 통합을 위한 전략 수립, 용산 대통령실과의 소통과 협력체계 구축, 대야 관계 정상화, 여야 협치의 복원 등이 모두 비대위원장 한동훈이 떠맡아야 할 과제들이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과제는 집권당 위기의 본질이라는 수직적 당정 관계의 변화다. 이는 과연 한동훈이 대통령에게 직언(直言)과 고언(苦言)을 할 수 있는가와 연결돼 있다. 이와 함께 ‘김기현 비극’의 시작이었던 3월 전당대회 때 용산의 노골적인 개입이 현재 어떻게 중도 확장을 막고 보수 지지 기반을 축소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복기해 성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직적 당정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만들어내기 위한 과제로 김건희 특검법 대응만큼 화급한 일도 없다. 당장 비대위원장 출범 직후 맞닥뜨리게 될 사안이다. 무엇보다 ‘숨은 권력자’ 문제의 실체를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국민 머릿속에는 몰카 영상에서 드러난 대통령 부인의 품위 상실, 보수에 대한 경멸조 발언, 남북관계와 관련해 친북 성향 목사와 나눈 부적절한 대화 내용 등이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리스크 재발방지책

한동훈은 “공직 생활을 하면서 누구도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도 특검법을 “악법”이라고 했고, 김건희 디올백 의혹엔 “몰카 공작”이라고 단정했다. 다 맞는 말이라고 쳐도, 문제는 국민이 이미 김건희 특검법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넘어 윤 대통령 집권 후의 각종 김건희 리스크와 연결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서울경제신문 의뢰로 최근 실시한 김건희 특검법 여론조사 결과, 찬성이 67%다. 진보와 중도에서는 각각 90%와 73%, 보수에서도 42%가 특검 도입에 찬성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더불어민주당은 28일 특검법안을 통과시킬 게 확실하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으로 보이는데, ‘논리적 반대’만으론 리스크에 질린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집권당 대표에 준하는 자리까지 오른 한동훈은 오랫동안 각별한 상하관계였던 대통령이 부담스럽겠지만, 김건희 리스크의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건의해야 한다. 그게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리더의 자세다.

다음과 같은 재발방지책이 특검법 거부권 행사의 트레이드 오프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①제2부속실 신설 ②특별감찰관 임명 ③대통령(부부)의 대국민 사과·재발방지 약속 ④여사의 공적 활동 제한과 사저 칩거. 기자는 친윤 국회의원 A, 중립 성향의 전 의원 B, 총선에 출마할 정부 고위직 인사 C, 정치 원로 D의 생각을 물었다. A와 B는 ①②를 택했다. C는 ①②④를, D는 ①②③을 꼽았다. ①과 ②는 공통필수다. 한동훈이 특검법과 관련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경우, 공통필수 외에도 대통령(부부)의 대국민 사과나 여사의 구체적인 자숙 약속과 같은 ‘+α’가 재발방지책으로 나와줘야 하는 것이다.

◇첫 시험대

김건희 특검법 대응은 한동훈이 맞닥뜨릴 첫 시험대이자 수직적 당정관계의 변화를 가늠할 첫 관문이다. ‘특검법=악법’이라는 논리만 내세우며 대충 지나가려 한다면 한동훈 비대위는 그날로 휘청거리게 될 것이다. 파천황의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집권당 비대위원장을 결정할 때엔 대통령이든 한동훈이든 그만 한 각오는 했을 것으로 본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김정남’은 1987년 1월 전두환 정권 때 대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을 확인하고 규탄 성명서 초안을 쓴 인물로, 6월 민주화운동의 숨은 기획자. 김영삼 정부 시절 교문수석을 지냄.

‘파천황’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된 상태를 깨트리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중국 고사에서 나온 말. 아무도 한 적 없는 큰일을 제일 먼저 한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미증유·전인미답과도 통해.

■ 세줄 요약

파천황의 계보 : 한국의 대통령은 대부분 파천황의 길을 개척한 공통점이 있어.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은 결정적 순간에 ‘하늘을 배신할 정도의 행동’으로 정치·사회 변혁에 성공. 윤석열도 비슷한 경험 공유.

정치인 한동훈 : 집권당 비대위원장이 된 한동훈의 당면 과제 중 가장 어려운 일은 수직적 당정관계의 변화이며, 그 첫 시험대는 ‘김건희 특검법’ 대응일 것. 이는 한동훈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가와 연결됨.

재발방지책 : 특별감찰관 임명이 ‘김건희 리스크’ 재발방지의 충분조건은 못돼. 한동훈이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내 국민이 납득할 ‘+α’의 해법을 내놓으면 성공, 그러지 않으면 한동훈 체제는 탄생과 함께 휘청거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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