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에서 대화로 ‘유연한 실용주의’ … 김동명, 경사노위 한 축으로 우뚝[Leadership]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5 08:56
  • 업데이트 2024-02-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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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한국노총 내 소수 계파 출신
강경·온건파 현안 조율 능해
타인에 대한 ‘뒷말’ 하지 않아

작년 1월 상시 투쟁 주장하다
5개월 만에 노사정 대화 복귀

4월총선 앞두고 정부와 대화
여소야대 상황이 재현될 경우
정부와의 협력에 소극적일 듯

노조의 이익을 관철시키면서
변화의 리더십 보여줄지 관심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계에서 가장 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곳은 한국노총이다. 지난해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서며 줄곧 긴장 관계를 형성했고, 지난 6월에는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 진압을 이유로 노사정 대화 중단을 선언했지만 5개월 만에 대화에 복귀했다. 정부와의 관계도 기존 ‘투쟁’ 모드에서 빠르게 ‘대화’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에선 한국노총 변화의 중심에 있는 김동명 위원장에게 주목하고 있다. 그는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조합원 200명 정도에 불과했던 일동제약 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한국노총 화학노련 위원장을 거쳐 2020년과 2023년 연거푸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선거에 강하면서도 강성은 아니다. 그는 금속·금융·공공 부문이 주류인 조직 내 소수 계파 출신으로, 강경·온건파 사이에서 현안 조율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사석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뒷말’을 하지 않고, 그런 성품으로 인해 적이 없다”며 “내부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의 의견을 다 들은 후 본인의 생각을 바꾸는 유연함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안팎에선 김 위원장이 노동계를 대표하는 사회적 대화 파트너로 적합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노동 현안을 두고 정부·경영계와 조율해야 하는 숙제와 함께 내부 산별의 입장까지 아울러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투쟁’에서 사회적 대화로 돌아서며 보인 ‘실리 리더십’ = 민주노총은 ‘투쟁’ 이미지가 강한 반면, 한국노총은 매 정부에서 ‘실리’를 챙겼다. 하지만 윤 정부 초반 정부와 날 선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민주노총과 비슷한 투쟁기구를 두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월 한국노총 위원장에 재선된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상시적 투쟁기구’를 강조했다. 한 달 뒤에는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을 만나 “정부 정책에 일방적 들러리로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각을 세웠다.

‘상시 투쟁’을 앞세우던 한국노총의 노선 선회 배경은 역시 명분에 앞선 실리였다. 노동계에선 한국노총이 △정부 보조금 △내부 이탈 방지 △공무원·교원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 등을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달리 조합비를 통한 운영에 한계가 있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지역의 노동상담소 운영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노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지역 본부를 중심으로 대화 요구가 강했다. 특히 12만 조합원을 둬 한국노총 내 최대 계파 중 하나인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사회적 대화 무산으로 공무원·교원 타임오프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이탈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은 공개석상에서 “타임오프 시행 문제 등에서 정부·여당과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면서 경사노위 내에서 관련 의제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하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 자체의 영향력이 가장 높은 시점에 정부와의 대화를 선택했다. 노동계에선 이번 결정으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실리 또한 기존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속도 내는 노사정 대화, 관건은 한국노총의 추동력 = 한국노총의 변화에 따라 사회적 대화가 속도를 냈고 본격적인 대화 테이블로 이동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한 이후 한 달 만에 노사정 대표자들이 만났고, 곧바로 노사정 부대표자 회의가 조직됐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 등 노사정 부대표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 의제를 조율했다. 이들은 노동시장 구조개선 의제를 △저출산 및 일·가정 양립(근로시간 등) △고령자 고용 △위기의 노동시장(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크게 3가지로 정리했다. 본위원회가 꾸려지면 세부 의제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계에선 노사정이 실제 대화 테이블에서 속도를 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크다. 일단 오는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한국노총의 대화 속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우세할 경우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야당이 우세할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 관계자는 “여소야대 상황이 재현될 경우, 한국노총 지도부가 무리해서 정부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주요 국면마다 조직 내에서 대두할 강경파들의 목소리도 변수다. 지난 2015년 노사정이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이 해소 등을 담은 ‘9·15 노사정 대타협’을 내놨을 때도 정부·여당의 압박에 한국노총 내 강경파가 힘을 받았고, 결국 대타협안은 묻혔다. 다만 당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에 비해 재선인 김동명 현 위원장의 조직 장악력이 더 강하다는 평이 나온다.

◇한국노총, ‘어용’과 변화의 리더십 = 한국의 노조는 태생적으로 ‘투쟁’ 기조가 강해 한국노총이 대화에 나서면 ‘어용’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한국노총 대화파는 어용이란 비판이 나올 때마다 ‘어려울 때의 용기’로 맞받아치며 대화 테이블에 나선다. 하지만 정부·경영계와의 대화에서 기존 방침의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의제로 내세운 ‘정년연장 법제화’부터 경사노위 내에서 조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정년(60세)과 국민연금 수급(1969년 이후 65세) 시작 기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법적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이미 2016년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현실 정년은 49세다. 정년을 연장해도 현실에서는 일부 유노조·대규모 사업장 직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며, 대부분 근로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정년 연장 법제화에 따라 청년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노동계 전체 현안을 다루는 노사정 대화에서 정년 연장 법제화를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일부 국가들이 운용하는 ‘퇴직 후 재고용’ 방안에 더해 법적 안전장치 등을 조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업종에 대한 근로시간 개편안도 노사정 간 조율이 필요하다. 당초 한국노총은 근로시간 개편을 의제로 다루는 것조차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이 연장근로 단위 산정을 ‘1일’이 아닌 ‘1주’로 판단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노동계 내에서 근로자 휴식권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 근로시간 개편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초 전 업종에 대한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다가 ‘주 69시간 근무’ 여론 반발에 막힌 후 국민 설문조사를 거쳐 일부 업종으로 제한해 적용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의무휴식권 등을 얼마만큼 반영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본격적인 대화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경영계는 파견제도 개선과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등 예민한 안건을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노사정 대화 기간도 1년 안팎으로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이 노조의 이익을 관철하면서 변화의 리더십을 보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명(왼쪽 세 번째)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노사정 대표자들과 간담회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동명 위원장은

21년만의 연임 위원장으로 조직 장악… 민노총에 내줬던 ‘제1노총’ 지위 탈환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1989년 일동제약에 입사해 노조 활동을 시작했고 1994년 노조위원장으로 본격적인 노동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주도하며 노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5일 노동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67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나 안법고와 중앙대 경영학과 독학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한국노총 경기도지역본부 교육국장과 부위원장을 거쳐 지난 2020년 위원장 선거에 당선됐다. 금융·공공 부문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노총에서 제조업 산별노조 출신이 위원장에 선출된 것은 장석춘 전 위원장(2008년 취임) 이후 12년 만이었다. 또 2023년에는 2002년 이남순 위원장 연임 이후 21년 만에 현직 위원장으로 연임에 성공하며 한국노총 내 장악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2020년 취임 직후 ‘한국노총 위상 회복’을 내걸었다. 2022년 기준 조합원 수 112만1000여 명으로 민주노총에 내줬던 ‘제1노총’ 지위를 탈환하는 성과도 거뒀다. 김 위원장은 주요 국면마다 ‘투쟁’을 앞세우며 ‘강성’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대화에는 적극적인 편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9월 ‘9·15 노사정 대타협’ 직후에는 대타협에 포함된 양대 지침에 반대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제조업 공동투쟁본부에서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사회적 대화 참여는 꾸준히 유지했다. 이번에도 노사정 대화 테이블에 전격 참여했다.

한국노총은 2017년 19대 대선 때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책협약을 맺었고, 2022년 20대 대선 때는 김 위원장이 직접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통상 정부와 우호적인 분위기를 통해 ‘실리’를 추구했는데, 윤석열 정부 초반에는 김 위원장 주도로 ‘강 대 강’ 대결 양상을 보였으나 최근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오는 6일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에 참여한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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