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이끌어갈 트렌드 중에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눈에 띈다. 서로 연결된 도시와 지역이 액체처럼 유연하게 변화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리퀴드폴리탄은 지역 발전의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열어주는 개념이다. 각각의 지역이 가진 독특한 문화 자본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이들의 시너지가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 지역 발전의 새로운 트렌드라면, 농촌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매년 수십만 명의 귀농인이 삶터를 꾸리고 있는 농촌은 자연과 여유로움이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체계적인 관리 수단이 없어 잠재력을 발현할 기회가 모자랐다. 그렇다 보니 거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은 인구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고령화로 인해 소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땅값이 싸다. 그뿐만 아니라 인구밀도가 낮아 제조 공장이나 창고나 재생에너지 시설 등이 여기저기에 있다. 일관성 없는 개발 행위가 경관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농촌공간재구조화법’이 지난해에 제정됐고, 이 법은 오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농촌의 난개발과 지역 소멸 등을 막기 위해 농촌 재구조화와 재생을 통해 삶터·일터·쉼터로서의 농촌다움을 회복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시·군이 지역의 여건과 특색을 반영한 공간계획을 착실히 실행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농촌 지역의 새로운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은 경관농업지구나 농업유산지구로 지정돼 더욱 농촌다워질 것이며, 농촌융복합산업지구에서는 농촌의 자연·문화자원, 농업 생산물 등을 연계한 다양한 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생활 서비스 인프라가 확충되면 관계 인구 확대는 물론, 청년층의 농촌 유입과 정착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교육·복지·의료 등 사회 서비스 전달 체계를 고도화한다면 농촌 공간이 초고령사회의 돌봄 수요를 충족할 최적의 장소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속도감을 더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할 수 있는 협의 기구를 마련하고, 다양한 공동체가 시간 공간상의 제약을 뛰어넘어 농촌의 자산을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농촌 지역의 디지털화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농촌을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갈 혁신의 무대로 인식하며 도시와의 연계를 통한 농촌 재생에 힘쓰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17년부터 ‘스마트 빌리지’ 정책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지역 간 네트워크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촌 주민이 다른 지역 공동체와 협력해 농촌의 경제·사회·환경 상황을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영국·독일·프랑스도 도농 간 격차를 없애기 위해 농촌 디지털 활성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지역 간 연계를 통한 관계 인구 창출 확대 사업으로 농촌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농촌을 활력 넘치는 기회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할 때다. 농촌의 무궁무진한 자원을 소재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간다면 농촌 공간이 다채로운 매력으로 빛나는 기회의 장으로 거듭날 것으로 확신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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