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테러, 급진 이슬람 소행” 인정… “배후는 우크라” 고집

“테러범 왜 우크라로 도피했나”
대책 회의서 의혹 재차 제기

러 곳곳 폭탄 허위신고 시달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가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테러 지시 배후는 우크라이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백악관은 “크렘린궁의 선전전”이라고 비판했다.

25일 푸틴 대통령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대책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이슬람 세계가 수 세기 동안 이념적으로 싸워온 급진 이슬람주의자의 손에 의해 이번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 직후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아프가니스탄 지역 분파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의 소행이라고 밝힌 점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도 이번 테러의 책임은 IS에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누가 그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지만, 이제는 누가 그것을 명령했는지를 알고 싶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왜 우크라이나로 도피하려고 했는지, 그곳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가 테러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재차 제기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이번 테러를 ‘협박 행위’로 규정하며 “누가 이익을 얻는가? 2014년부터 네오나치 우크라이나 정권의 손에 의해 우리나라와 전쟁을 벌여온 자들이 자행해온 시도 중 하나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이번 공격은 IS가 실행했으며 우크라이나와는 어떤 연관도 없다”며 “푸틴과 그의 측근이 우크라이나를 비난할 방법을 찾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3월 초 러시아에 테러 공격을 경고했고 3월 7일에 러시아 내 미국인에게도 경고했다”며 “이는 우리가 IS 활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감시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러시아 곳곳에선 폭탄 설치 허위 신고와 대피 소동이 이어지는 등 테러 여진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모스크바 고로드 쇼핑센터와 국립의료수술센터에는 폭발 장치가 설치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약 1250명이 대피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에 있는 파사지 쇼핑센터도 폭발물 위협으로 대피 소동이 벌어졌다. 실제 폭발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모스크바에 있는 쇼핑센터 약 500곳에 민간 경비업체 등에 소속된 무장 경비원을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날 당국에 따르면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망자 수는 139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95명이다. 부상자는 182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국가 보안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한 프랑스에 이어 이탈리아도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 테러 대응 태세를 높이고 나섰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감시와 검문을 모두 강화할 것”이라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이동하는 장소와 민감한 표적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