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면 울리는 배꼽시계… 떡볶이·순대·라면, 오늘 뭐 먹지?[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4-05-02 09:02
  • 업데이트 2024-05-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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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간식

끼니 아닌 출출한 오후에 먹는 것… ‘야식’ ‘새참’ 등과 달라
韓은 쌀 ‘주식’ 밀가루 ‘부식’ 개념에 분식을 간식으로 인식

과거엔 찐옥수수·군고구마 등 농수산물 그대로 익혀 먹어
최근엔 빵·과자·초콜릿 등 간편한 형태 디저트류가 ‘인기’


온몸을 감싸는 화창한 볕, 눈이 시린 푸른 잔디, 먹보다 진한 꽃그늘. 바야흐로 나들이의 계절이다. 오월의 푸른 나날은 집 안에 갇힌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괜스레 왔다 갔다 활동량이 증가하니 움처럼 식욕 또한 돋아난다. 단단한 점심을 챙겨 먹었는데 어느덧 허기가 돈다. 이럴 땐 망설일 것 없이 간식 타임이다. 시곗바늘이 니은(ㄴ) 자로 굳어 오후 3시를 가리킬 때면, 혀도, 배도 같은 모양으로 뻗게 마련이다.

간식(間食). 끼니에 해당하지 않는 음식이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끼니 사이에 먹는 일로 주로 출출한 오후에 먹는 것을 이른다. 저녁 이후 밤에 먹는 것은 따로 ‘야식(夜食)’이라 부른다. 군것질, 주전부리는 비슷하지만 조금 내용이 다르다. 군것질은 글자 그대로 정찬 끼니 이외에 따로 먹는 ‘군음식을 즐기는 일’을 뜻하며 주전부리(조잔부리)는 ‘음식을 맛이나 재미 삼아 먹는 것’을 정의하는 우리말이다.

영어로는 간단하게 먹는 밥인 스낵(snack)이 간식과 비슷한 의미며, ‘심심풀이’란 원뜻을 가진 일본어 히마쓰부시(暇つぶし)는 간식이란 개념으로도 쓰인다. 예전에 열차 안에서 팔던 “심심풀이 땅콩∼”과 같은 이치다. 살짝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심심풀이로 먹는 것도 간식이다.

농사일·건설업 등 고된 육체노동을 하며 점심과 저녁 이후 챙겨 먹는 새참(light meal)은 간식이 아닌 끼니에 속한다. 열량 소모가 많으니 중간에 쉬며 에너지를 보충할 겸 밥을 한 번 더 먹어야 했다. 입이 심심해서, 또는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는 끼니 사이에 먹는 또 다른 끼니 개념이다. 새참이란 말도 ‘사이참’의 준말이다. 참은 쉴 때 먹는 음식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는 것도 에너지의 빠른 보충을 위해서다. 막걸리 자체가 탄수화물인 데다 알코올도 들어 열량이 높다. 이런 새참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농경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문화다.

야참(야식)은 새참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밤에 일하는 이들이나 늦은 밤 열리는 축구 등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저녁을 먹은 후 배를 채우는 것이 야참이다. 저녁식사 이후엔 아침까지 끼니가 없기 때문에 사이참이 아니고 야참이라 부른다. 손수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이나 국수, 배달음식 족발, 치킨 등이 야참 메뉴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브런치(brunch)는 여러(?) 이유로 아침 식사를 거르고 느긋하게 먹는 ‘끼니’ 중 하나다. 요즘도 간식이나 야참보다는 브런치를 즐기는 생활 패턴이나 메뉴 면에서 한결 여유롭다.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간식 메뉴를 뭐라 특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출출해서 짜장면이나 우동, 햄버거 등 끼니 메뉴를 먹어도 당사자에겐 간식일 수가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끼니보다 양이 적고 먹기 편한 것을 간식 메뉴로 친다. 주로 분식(分食)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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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천 외갓집 빨간오뎅



우리 식습관에서 예로부터 쌀은 주식, 밀가루는 부식 개념이 있었고, 간식이 이뤄지는 시간에는 일반 식당보다 분식집이 주로 간식 판매처 역할을 해온 까닭이다. 게다가 간식비에 주식보다 더 많은 지출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가격 저항도 있었던 터라, 정식 메뉴보다 저렴한 분식이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떡볶이, 순대, 김밥, 라면, 만두, 튀김 등 분식집 메뉴가 지금껏 주요 간식 메뉴로 인식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식습관도 다변하고 문화 또한 달라져 요즘의 간식 메뉴는 분식 이외에도 꽤 다양한 분야로 넓어졌다. 디저트류가 간식으로 자리를 굳히는가 하면 등산이나 험지에서 생존을 위해 지녔던 에너지바 등도 간식으로 재평가받기에 이르렀다. 푸딩, 젤리, 마카롱, 마들렌, 양갱, 딤섬, 도넛, 오트밀, 에너지바 등이 새로운 간식으로 등장했다. 과거 선원들의 비상식량이었던 비스킷이나 건빵 같은 음식이 간식으로 용도 전환된 것처럼 말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통간식 쑥꿀레



갑작스레 열량이 필요할 때나 기분전환을 할 때 간식은 훌륭한 보완재 역할을 한다. 달달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캔디, 과일 등은 물론, 적당한 포만감과 에너지를 채워주는 탄수화물류도 생체리듬에 순기능을 끼친다. 그래서 직장 탕비실에 간식을 비치한다. 각성 작용을 하는 커피와 함께 간식은 업무 효율을 높이고 만족감을 주는 복지 차원에서 무척 중요한 아이템이다. 어디를 가나 사무실이나 공장 등에 과자나 사탕 같은 간단한 간식류를 챙겨 놓은 풍경을 볼 수 있다. 과거 개성공단에서도 오후에 초코파이를 공원들에게 하나씩 지급한 바 있다.

예전부터 사기 진작이 필요한 군대에서도 지급했던 것이 간식이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각국은 건빵(hard tack) 같은 증식(增食)류부터 케이크, 쿠키, 젤리까지 다양한 종류의 간식 키트를 병사들에게 제공했다. 미군의 전투식량(MRE)이 유명하다. 생고기나 채소를 캔에 넣어 나중에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 에이레이션(A-Ration)과 반조리 재료를 캔에 넣은 비레이션(B-Ration), 즉석에서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시레이션(C-Ration)이 예전부터 알려진 미군 전투식량이다. 이 중 ‘생존 키트’로 설계된 디레이션(D-Ration)은 죄다 간식에 가깝다. 초콜릿바 등 바 타입으로 이뤄진 간식 키트로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간식 타임은 의외로 영국에 있다. 19세기에 시작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문화다. 오후 3시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가벼운 다과를 곁들인 간식 메뉴다. 당시엔 영국 귀족들이 점심은 간단히 먹고 오후 8시나 돼야 저녁을 먹었던 까닭에 이때쯤 시장기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1840년 안나 마리아 러셀 공작부인에 의해 생겨난 이 문화는 금세 영국 전체로 유행했고 이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프리카, 싱가포르, 홍콩 등 식민지까지 퍼져 나갔다. 차와 함께 내는 주요 구성은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비스킷 등으로 지금의 간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를 가벼운 식사 문화로 보는 것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에도 간식으로 빵을 먹는 경우가 많다. 원래 서양에서 빵은 주식 개념이 강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과자의 개념에 넣는 경우가 많다. 제과제빵이란 말도 있고 빵을 팔면서 제과점 또는 과자점이라 쓰기도 한다. 대부분 빵은 별다른 식기 없이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까닭에 간식으로 즐기기에 좋다. 반면에 유럽이나 미국에선 빵은 물론이며 과자까지 주식의 범주로 여길 때도 있다. 육류에 비스킷이나 크래커, 쿠키를 곁들여 식사를 한다. 두 번 이상 구워내 수분을 날린 영국식 비스킷이 주식으로 출발한 경우이며, 치킨 프랜차이즈 KFC에서 파는 미국식 비스킷은 아예 빵(스콘)처럼 생겼다.

대한민국의 간식 문화는 근대화 시기 노점으로부터 출발했다. 찐 옥수수, 군고구마, 갯고둥 등 농수산물을 그대로 조리해서 팔던 것이 기원이다. 이후 떡이나 전병, 찐빵을 팔던 노점이 점포를 얻어 차리며 분식점으로 진화했다. 이들은 점심때엔 국수 등 주식을, 이후엔 간식을 팔았다. 길거리 포장마차를 차리고 간식을 파는 풍경은 요즘에도 쉽게 볼 수 있다. 가로 정비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떡볶이 포장마차에서는 출출한 시민들이 간식을 벗 삼아 시장기를 달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노점 메뉴는 1980년대부터 사랑받아 온 떡볶이와 튀김, 순대, 어묵꼬치(오뎅) 등이다. 신촌이나 종로, 청량리, 영등포 등 도심과 부심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간식 포장마차의 하늘색 줄무늬 포장이 어깨를 맞댔다. 종로 김떡순(김밥·떡볶이·순대), 떡튀순(떡볶이·튀김·순대)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간식 문화가 이때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장사가 장사다 보니 매콤한 떡볶이 양념에 식은 튀김을 버무려 주기도 하고, 순대와 내장을 썰어 고기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주기도 했다. 튀김 종류에 자신 있는 집은 핫도그와 ‘도나쓰’, 고구마튀김, 호떡 등을 자기 메뉴로 챙겼고, 누군가는 어묵 국물에 우동도 말아 팔았다. 오후부터 문을 여는 포장마차마다 각자 단골손님이 생겨날 정도로 성업했다.

길거리 간식 메뉴도 요즘은 퍽 다양해졌다. 전통의 ‘김떡순’을 벗어나 각종 오방떡(풀빵), 도넛(꽈배기), 닭꼬치, 떡갈비, 핫바, 핫도그, 소시지 바 시대로 접어들더니 해외에서나 보던 낯선 외국 음식이 간식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튀르키예 케밥이나, 초콜릿 시럽을 잔뜩 뿌린 태국 바나나 로띠가 등장하더니, 유럽의 노점처럼 파우더 감자튀김과 생크림 와플을 팔기도 한다.

노점상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은 시중 편의점이 ‘간식 백화점’이다.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에브리데이 등 대형 체인 편의점에는 각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나온 간식이 이루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게다가 편의점은 24시간 아무 때나 즐길 수 있으니 대한민국은 이제 ‘간식의 천국’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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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춘곤증도 넘어서는 오후 3시의 유혹을 어찌 견딜 재간이 있을까. 칼로리 계산이나 식이요법의 강박에서 벗어나 잠깐 오후 간식 타임의 여유를 가지면 어쨌든 활력 넘치는 반나절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떡볶이 = 6.25떡볶이. 궁중 떡볶이가 아닌 근현대 간식 떡볶이의 역사를 함께한 곳. 과거 마산 부림시장 좌판에서 시작했는데 손님들이 모두 바닥에 쪼그려 앉아, 떡볶이를 먹는 광경이 꼭 전쟁 당시 같다고 해서 붙은 상호. 건어물을 넣어 깊은 맛을 내는 육수에 칼칼한 고춧가루를 써 시원한 뒷맛을 낸다. 떡볶이는 기본 쌀떡.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북12길 16-23. 떡볶이, 순대 4000원.

◇만두 = 대사리 만두. 중국 동북 지방에선 만터우(饅頭)나 바오쯔(包子)를 주식으로 먹지만 한국인은 작은 만두를 주식으로 먹는다. 고추를 살짝 삭혀 소에 넣어 빚은 고추 만두로 소문난 집. 만두 자체는 크기가 작지만 피는 제법 두꺼워 출출하고 입맛 없을 때 맛보기 그만이다. 괴산군 괴산읍 읍내로 135. 12개 5000원. 30개 1만 원.

◇어묵 = 외갓집. 제천 내토전통시장에서 ‘빨간오뎅’으로 유명한 집. 꼬불이 어묵을 꼬치에 꿰어 매운 양념에 적셔 놓는다. 입안에 넣는 순간부터 확 밀려드는 매운맛에 눈물이 찔끔 나지만 뒷맛은 달곰하니 계속 입맛을 당긴다. 국물에 넣지 않고 양념에 무쳐낸 어묵이라 불지 않아 존득한 식감을 유지한다. 제천시 풍양로17길 7. 2개 2000원.

◇튀김 = 엄마손김밥. 한정식으로 유명한 전남 강진군에서 간식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집. 다른 것도 맛이 좋지만 얇고 기다랗게 튀겨낸 김말이가 가장 인기 메뉴. 늦게 가면 떨어지고 없다. 순대와 김밥, 튀김 등 다양한 간식 메뉴를 갖췄다.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3 건우1차아파트. 김말이, 야채 3개 2500원. 고구마 1000원. 순대 3000원. 김밥 2500원.

◇핫도그 = 자미당 통인시장점. 일대에서 이름난 꽈배기 집. 1980년대 생겨난 간식 메뉴인 소시지 핫도그가 있다. 식어도 존득한 식감이 살아 있는 본격 찹쌀 꽈배기를 파는 집이라 핫도그 역시 존득하다. 고소한 껍질 맛이 간간한 소시지와 잘 어우러진다. 주말이면 가게 앞 정자에 간식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78. 꽈배기, 팥도너츠 3개 2500원. 핫도그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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