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공무원 ‘튀는 머리염색’ 불경죄인가

얼마 전 지금까지 다니던 이발소 대신 미용실에 들러 블리치(Bleach·표백)라는 것을 한 번 해 보았다. 갑작스럽게 블리치를 하게 된 것은 몇년전 전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던 첫해에 이상하게도 머리 앞 부분만 집중적으로 세었는데 이를두고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아 블리치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블리치를 해 까만 머리가 군데군데 갈색으로 변한 것을 보니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흰머리카락이 까만 머리카락과 함께 갈색으로 바뀐 것이 보기에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평소에 젊은 사람들이 머리를 온통 노랗거나 붉게 물들인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부분 염색으로 멋을 부린 것은 괜찮게 생각해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블리치를 한 후 주변에서 더 성화다. 동료든 민간인이든간에 만나는 사람마다 “공무원이 그래도 되냐”고 걱정스럽게 묻곤 한다. 관료로서 너무 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공무원이 염색하는 경우는 흰머리가 나이든 것으로 보여 ‘불경죄’를 저지를까 우려해 까맣게 물들이는 것으로만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관료조직의 특성상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어지는 머리카락이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아랫사람은 그대로 두기가 거북스러운 것이다. 그런 판이니 가만히 있는 까만 머리를 군데군데 갈색으로 표백시킨 헤어스타일이 튀는 행동으로 여겨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료의 통상적인 이미지는 짙은 색깔의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말쑥한 모습일 것이다. 사람의 외모가 비슷하면 그만큼 의식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관료로서 일정한 행동준칙을 따르다 보면 의식도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간의 ‘발목을 잡는’ 관료가 아니라 민간을 이해하는 관료가 되고자 한다면 현실의 변화와 움직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들이 집단사고의 틀에서 독선적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장과 사고를 받아들여 정책수립에 반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우리 공직사회에서 ‘꽁지 머리’를 한 공무원을 튄다고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날이 언제쯤일지 궁금하다.

<허명환 서기관·myhuh@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