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제자’ 南 최현배-北 김두봉, 한글전용 주창…‘언어 분단’ 막았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이 되는 해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은 공히 1948년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분단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60년간 남과 북을 만들어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번 주내 출간될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는 남북 정부수립 60주년 특집으로 ‘두 가지 길, 남과 북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 아래 박정희와 김일성을 비롯, 문학계의 염상섭과 한설야, 한글학자 최현배와 김두봉, 사학계의 이병도와 김석형, 과학자 이태규와 리승기 등을 비교, 고찰하고 있다. 이 중 언어, 역사, 과학의 세 분야를 살펴본다.

◆최현배(1894~1970)와 김두봉(1889~1961)= 분단 60년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언어 이질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상호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다. 이는 60년이라는 단절 기간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같은 한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론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준식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이에 대해 “언어정책에서의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언어의 분단을 막은 두 한글학자’라는 제하의 수록문에서 남북의 언어 정책을 이끈 최현배와 김두봉 둘 다 한글 전용을 주창했던 주시경의 제자라는 점, 남북 모두 한글쓰기와 가로쓰기, 형태주의에 입각한 맞춤법 등 언어정책의 기본 골격이 동일하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부산 동래 출신의 김두봉과 울산 출신의 최현배는 주시경의 문법이론과 언어 민족주의를 같이 배웠다. 이들은 한자의 세계를 한글의 세계로 바꾸는 언어 혁명을 추구한 ‘주시경 학파’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김두봉과 최현배는 각각 북한과 남한에서 언어 정책의 뼈대를 세우고 틀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연안파’라고 불리는 정치 세력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두봉은 북한정권 수립 이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일성종합대학의 초대 총장 등을 역임했으나 1957년 연안파 숙청 때 거세당하고 말았다. 최현배는 문교부 편수국장, 한글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관민 양면으로 한글 전용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최현배 역시 그 세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김두봉과 최현배가 있었기에 남북 모두 대한제국 시기나 일제 강점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언어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이 교수는 결론 내렸다.

◆이병도(1896~1989)와 김석형(1915~1996)= 남한과 북한의 역사학 정립을 주도한 대표적 역사학자는 이병도와 김석형이다. 이병도는 실증사학의 입장에서 남한 역사학의 정립을 주도, 남한 역사학계의 거두로 인정받았다. 김석형은 북한의 마르크스 역사학과 주체사학의 입장에서 북한 역사학의 정립을 주도했다.

김일수씨는 수록문 ‘이병도와 김석형-실증사학과 주체사학의 본질’에서 두 사람의 활동과 이력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들이) 남북한 역사학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우선 실증사학 역사 연구 방법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 연구 방법의 도입과 적용을 통해 한국사의 정립에 기여했다는 것. 하지만 “이병도에게는 역사 발전에 대한 문제의식 부족과 시기 구분에 대한 인식 부족이, 김석형에게는 실증적 검토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태규(1902~1992)와 리승기(1905~1996)= 두 사람은 연구 업적의 수준과 영향에서 남과 북을 대표하는 과학자다. 이태규가 양자화학의 선구자였다면 리승기는 새로운 합성섬유 비날론을 개발한 인물로 유명하다.

김근배 전북대 교수는 ‘남북의 두 과학자 이태규와 리승기’ 제하의 수록문에서 “한반도에는 서로 다른 과학, 즉 세계과학과 주체과학이 존재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이태규가 과학의 국제성을 선도한 인물이라면 리승기는 과학의 주체성을 이끈 인물로 각각 남북에서 추앙받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이 차이를 화합할 수 없는 체제상의 차이로만 단순화할 수는 없으며, 과학에서 세계성과 지역성이 공존하는 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과학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에는 차이점 못지않게 많은 유사점이 있었다. 이태규는 응용과학의 중요성과 지역적 과학의 필요성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리승기 역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며 세계과학의 추세로서 석유화학의 가치도 파악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남북에서 이들의 과학을 일면적으로 이해한 나머지 그것을 체제의 차이로만 부각시켰다”면서 “과학자를 고찰할 때 남북 모두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모습에 더욱 초점을 맞춰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