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12 대한민국 리포트>이승철 “아프리카 차드에 유골 뿌려달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차드를 다녀온 뒤 콜레라기가 있는 것 같다며 농을 친 이승철은 특유의 밝은 웃음으로 기타를 잡고 노래 한 소절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이승철은 “노래만큼 기부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며 “내 인생의 중요한 소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나누며 살겠다”고 강조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아프리카 차드(Chad)에서 막 돌아온 이승철(46)은 누적된 피로로 얼굴이 부은 상태였다. 기분 전환용으로, 그가 부른 MBC ‘신들의 만찬’ OST 주제곡 ‘잊었니’가 음원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전하자, 이승철은 “나는 노래를 던져놓고 나가면 희한하게 잘된다”며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아이폰에 담긴 미공개 음원 100여개를 들려주며 또 어린애처럼 방긋 웃었다. “지금 당장 음반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곡 20개는 늘 준비하고 있죠. 이미 녹음한 곡들도 꽤 많은데, 모두 아프리카 가기 전에 해둔 것들이에요.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니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곡 작업을 하고 있어요.”

‘선(先) 작업’은 그가 2010년 25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 후 생긴 ‘버릇’이었다. 지난해 3월 그는 고(故) 박용하의 뒤를 이어 SBS ‘희망대사’를 맡아 차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차드에선 이미 SBS가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교 건립을 추진 중이었는데, 이승철은 마침 개교식에 맞춰 이곳을 찾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뻘건 황토물을 식수로 대신하는 아이들, 수인성 질환으로 퉁퉁 부은 눈가를 파리가 파먹어도 ‘용인’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무지(無知)해서 방치하는 부모들을 보고 충격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이승철은 깨달았다.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빵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사실을. 이때부터 그는 이곳 아이들을 위해 학교 건립에 적극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들을 위해 짓는 학교는 단순히 교육의 장소가 아니라 커뮤니티 센터예요. 우물도 파고, 보건소도 짓고 하면서 샤워와 급식, 의료, 공부 혜택을 모두 누리는 거죠. 이걸 지으면 사방 10리에서 700, 800명의 아이들이 몰려와요.”

이 학교 이름은 이승철의 성을 따서 조합한 ‘리앤차드(Lee&Chad)’다. 이승철은 이 학교의 개교식을 본 뒤 개인적으로 이 지역에 10개 학교를 더 짓기로 하고 자신의 연간 음반·콘서트 수익 2억원씩 10년간 2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승철의 결심을 들은 SBS ‘희망TV’ 측이 “아예 100개 학교로 늘리자”고 제안했고, 연간 방송 모금액 300억원씩 5년간 1500억원을 이곳에 투자키로 했다.

처음에 막연하게 시작한 이 일이 온전히 그의 삶 속에 녹아들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 소녀 때문이었다. 첫 학교를 세우기로 한 차드의 도고레 마을에서 이승철은 8세 소녀 카디자의 눈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3세 때 눈에 생긴 티눈이 5년간 자라면서 눈 바깥에 종양으로 번졌고, 이 종양을 뜯어먹으려고 늘 아이 곁에 날파리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눈을 운명에 맡기고 있었다. 이승철은 보다 못해 이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 오른쪽 눈의 적출 수술을 시켰다.

“이 아이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어요. 그런 심한 질병을 앓고 있는데도 소녀 자신은 물론, 부모조차 거들떠보지 않았죠. 이게 다 무지에서 나온 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무지를 없애려면 반드시 학교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고, 앞으로 제 인생의 나머지 목표가 됐어요. 예전에 제가 공연하는 이유가 저와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오로지 아이들의 학교를 지어주기 위해서예요.”

이승철은 “카디자와 같은 아이들이 아프리카에 200만명이나 된다”면서 “황토물을 마시고 수인성 질환으로 죽는 아이들도 매년 수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눈곱만 잔뜩 끼어 있는 아이들, 10년간 안 닦은 듯한 솥단지에 끓인 수제비 2, 3조각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들의 아버지가 된 느낌이에요. 간절하게 제게 ‘정말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떠올리면, 자꾸 눈에 밟히죠. 그래서 계속 자꾸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체크하게 돼요.”

이승철은 그러나 정에 이끌려 무작정 도와주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역설한다. 학교를 짓고 싶은 마을은 ‘교육을 받야야 할’ 절박함을 앞세워 300달러 정도 돈을 모아 건립 기금에 보태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1달러50센트 정도의 수업료를 낸다. 이승철은 “무엇보다 주인의식을 길러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승철이 생각하는 ‘리앤차드’ 스쿨은 단기간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 학교의 100번째는 ‘희망 대학교’다. 대학에서 길러진 완성된 인재가 롤 모델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초·중·고교로 시작된 학교는 제빵기술, 정비기술 등 전문 인력을 키워 내는 직업학교로 가지를 치며 전문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넓힌다. 건립되는 학교에는 문화생활을 위한 음악반도 만들어진다. 기악, 타악, 성악반을 꾸린 ‘리앤차드 오케스트라’로 차드 전역에서 순회 공연도 가질 계획. 그는 “학교는 5년 안에 100개를 짓지만, 인재 육성은 20년을 내다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철의 기부와 봉사는 그의 음악 장르만큼이나 다양하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 등 물적 지원으로 시작된 기부가 김천 소년 교도소의 재능 기부로 이어졌고, 이젠 차드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투혼 기부’로 안착했다. 그의 기부는 1989년 ‘심장병 어린이 돕기’가 시작이다. 아이 한 명당 필요한 치료비 300만원을 지원하면서 기부의 눈을 뜬 것이다. 하지만 이 기부는 그의 말에 따르면 ‘형식적’이었다고 한다.

“그때 대마초 사건으로 뭔가 이미지 회복의 기회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반성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시작했는데, 한 명씩 아이들이 새 생명을 얻는 걸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고쳐준 어린이만 150여명이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고 난 이후 그가 택한 기부는 재능 기부. 19세 미만의 소년 재소자들로 꾸린 합창단을 이끌며 그들의 희망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넉살 좋은 성격과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친화력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기쁨, 슬픔을 함께했다.

“처음에는 연예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시작했던 기부들이 저도 모르게 점점 구체화되고 있더라고요. 기부도 결국 발전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기부나 봉사는 저에 대한 채찍질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현실을 구석구석 찾아 느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채찍질 말이에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물질적으로) 기부하는 것은 형식에 그칠 뿐이라고 봐요. 몸소 체험하고 아픔을 나누면 기부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거든요.”

자신의 기부 활동이 당당하고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된 순간, 이승철은 진실되게 전달할 힘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공연에 찾아오는 모든 관객들에게 공연 시간 중 20분을 할애해 기부와 봉사에 동참하자고 호소한다.

그는 앞으로 아프리카를 넘어 헐벗고 가난한 나라라면 어디든 손을 내밀 생각이다. 그러려면 음악을 더 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기가 있어야 기부 활동도 원활해지고 메시지 파급력도 커진다는 뜻이다. 기부의 진정성을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에, 그는 “차드 가서 살지도 모른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요. 얼마 전에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용사를 만났는데, 자신이 죽으면 유골의 반은 판문점에 뿌려 달라고 아들한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차드에 학교 100개 짓고 나면 유골의 반을 차드에 뿌려 달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