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선 만날 수 없었던… 소외된 민초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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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한국사 / 권혁은, 김대현 외 지음 / 푸른역사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정하게 짜인 각본대로 역사를 외운다. 고조선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를 지나 조선으로 또 일제 시대를 겪고 분단을 지나 대한민국이 완성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과서식 서사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뼘 한국사’에 수록된 ‘육 남매 아빠의 중산층 가족 도전기’의 첫 문장으로, 이 책 전체의 인식을 드러낸 대목이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 좀 더 확대하면 공식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역사다.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역사라고나 할까. 책에 참여한 13명의 필자는 모두 1980년대생으로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박사 과정·수료생인 젊은 역사학자들이다. 이들이 파고든 주제는 한국사 공식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역사다.

조선 양반들은 태어나 아명을 갖고, 성장해 성인식인 관례를 치르면 관명을 받고,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관명을 대신해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고 부를 수 있는 호(號)까지 평균 3개 이상의 이름을 소유했지만, 도대체 노비와 여성들은 어떤 이름을 갖고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가, 이들 젊은 역사학자들이 파고든 주제의 하나이다.

또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백정에 대한 법적 차별이 사라진 뒤 백정들이 다른 직종으로 신분을 바꾸던 1920년대, 예천군에서 벌어진 백정들의 단체 ‘형평사’를 둘러싼 사회 갈등을 통해 당대에 벌어진 ‘을과 을’의 다툼을 들여다본다. 당시 형평사를 공격한 중심세력은 지배계층이 아니라, 농민들로, 백정들이 농민으로 신분을 바꾸면서 자신들과 동등한 사회계층으로 편입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표출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식민과 통치, 지배와 피지배의 이중적 억압 속에서 ‘을과 을’의 다툼이 피 터지게 전개된 상황은 약자에 대한 약자의 공격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한국의 모습과 겹쳐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밑바닥에서 맨손으로 일어나 1970년대, 집, TV 그리고 백색 전화기를 마련한 중산층 이야기, 같이 월남에 파병됐지만 계급에 따라 돌아온 경제적 이익이 달랐던 사병, 한국전쟁기 포로, 연변 조선인들, 세종 시절 북방 이주민의 역사 등이 이어진다. 13편이 모두 긴 논문 혹은 단행본 한 권으로 풀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많은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2016년 젊은 역사학자들이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과정에 결성한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가 기획한, 작업이다. 이들은 국정 교과서뿐 아니라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검정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현행 역사 교과서는 여러 출판사에서 제작하고 있지만 교육부의 엄격하고 지나친 통제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학계에서는 기존과 다른 관점의 연구들이 등장하고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단체들을 발굴하고 있지만, 이 같은 역사학계의 최신 연구들이 독자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대단히 안타깝다고 밝혔다.

‘한국사 밖의 한국사’라는 부제를 단 책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겠다는 젊은 역사학도들의 시도다. 296쪽, 1만5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