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비대한 정부, 규제 혁파의 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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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두 연세대 일반대학원 교수

韓 18개인 행정각부 獨 14개뿐
건설은 내무부, 문화는 지방에
중기部 없지만 中企 세계 최고

안전·환경外 규제는 민간엔 壁
푸드트럭·차량공유 가로막아
철폐 의지와 정무적 역량 중요

규제가 많을수록 경제적으로 낙후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규제가 가장 적은 나라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이며, 가장 많은 나라는 터키, 멕시코, 폴란드다. 규제 최소화는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규제 완화를 외치지만, 탈(脫)규제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규제를 만들어내는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대해지면 규제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독일에는 정부 부처가 14개 있지만, 한국에는 무려 18개 있다. 독일에서 건설 업무는 내무부 소관이고, 과학기술은 교육부가 맡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없지만, 독일의 중소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문화체육관광은 지방정부의 고유 사무로서, 중앙정부에 관련 부처가 없다.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는 가장 효율적인 크기보다 몇 배 부푼 몸집을 갖고 있다. 관료주의란 부서의 인원과 예산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당·사회단체·대학 등 모든 조직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압박이 약한 관료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관료주의란 이름을 얻었다. 관료주의가 가장 약한 곳은 효율을 생명처럼 여기는 기업이다. 그러므로 정부 조직의 혁신을 위해 기업의 경영 마인드 도입이 필요하다.

독일의 관료는 깐깐하기로 유명하지만, 매우 효율적이어서 회사 설립 절차가 독일보다 간단한 나라는 싱가포르 정도밖에 없다. 독일의 관료는 선출직 정치인의 통제를 받는다. 의원내각제에서는 행정 부처의 수장인 장·차관을 국회의원이 맡는다. 소속 정당이 선거 공약 실천을 위해 내각을 맡는 것이다. 따라서 내각책임제에서 장관과 정무차관은 유권자 국민의 편익을 위해 행정혁신을 추구하고, 행정차관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 조직은 행정의 안정성을 지키는 가운데 서로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는 능력 있는 관료가 장관을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 부처가 통째로 관료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은 관료에 의해 실행되므로 대통령과 관료의 대결은 주로 관료의 승리로 끝난다. 관료의 힘은 법과 규정에서 나오며, 불필요한 규제라도 관료들이 법을 따르고 있다고 하면, 대통령도 더는 강요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직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도입한 개방직 인사 제도를 원래의 취지에 맞게 정착시키고, 개방직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만든 규제를 개인과 기업은 벽(壁)으로 느낀다. 그런데 규제는 한번 만들어지면 잘 없어지지 않으므로 국회와 정부는 입법 때 꼭 필요한지 고민해야 하고, 이미 만들어진 이후에는 불필요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걷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 보호라는 중대한 이익이 걸린 경우에만 강력하게 규제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긴다는 대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규제법을 만들면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의 경우 내국인의 이용이 제한돼 있지만, 실제로는 불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회피가 가능한 규제는 불편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철폐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규제를 없애기 어려운 것은 선한 규제와 나쁜 규제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한때 규제 개혁의 대표 사례였던 푸드트럭이 청년 창업의 대표 아이템에서 최근 자영업의 무덤이 되고 있다. 그것은 기존 상권의 반발로 일선 지자체가 푸드트럭의 영업장소를 허가하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제는 택시기사들이 반대하고, 원격진료는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규제를 없애려면 생존권의 위협을 느끼는 이익집단들에 의해 실타래처럼 얽힌 이해관계를 푸는 정무적 역량이 필요하다.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가 수공업자들을 실업으로 내몬다고 생각한 기계 파괴 운동가들은 신기술에 대한 공포심을 가졌다. 이러한 사회적 반발을 극복하고 영국이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동업조합이 규정지었던 직업 세계를 무한히 확대하는 데 기여한 경쟁의 원칙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우리도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사라지는 직종보다 더 많은 유망 직종이 생길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혁파하는 진취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