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북핵은 자유민주와 통일의 主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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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前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북핵 심각성 더 키운 지난 25년
국가의 책무 실패 통렬히 반성
상대 善意 기댄 평화는 기만극

강화·남한산성·아관파천 수모
애치슨라인 뒤 공산세력 남침
유비무환 태세로 북핵 맞서야

정부의 국정지표 중에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명기돼 있다. 정말 대담무쌍한 구호다. 개인의 자유와 능력은 어디에 두고 국가가 무슨 능력으로 5000만 국민의 인생살이를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일자리 찾기에 지쳐 실의에 빠진 청년이 수두룩한데,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려나. 게다가 국가가 책임지니까 그만큼 권한도 행사하겠다고 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게 있다. 외세의 위협이나 침략에 대응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일이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국민적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지난 25년간 늘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었지만, 해결은커녕 문제의 심각성이 더 커져 버렸다. 통렬한 반성 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간 유비무환의 교훈에 따른 자강(自强)의 노력이 부족했다. 물리력의 증강뿐 아니라,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시장에서 자기실현의 기회들이 박탈되거나 억압돼선 안 된다는 믿음이다. 둘째, 순진한 햇볕정책으로 공산 독재세력의 간계를 뚫어보지 못했다. 셋째, 한·미 동맹의 결속이 이완되면서 틈새가 생기고 있었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무기의 추가적 개발 및 생산과 전파를 하지 않겠다면서 이미 보유한 핵무기 폐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내세웠다. 핵보유국임을 자처하는 자세다. 우리 정부·여당은 이 신년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간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 대상으로 전제해온 것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순간 ‘북핵 폐기’는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북핵 폐기 과정이 찔끔찔끔 이어지면서 장기화할 경우에도 북한의 핵 보유가 사실상 점차 굳어질 가능성이 짙다. 이런 상황이 오면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력 균형이 무너지면 약자가 쉬 겁박을 느끼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공정하게 시비를 가려주거나 공권력 행사가 제도화해 있지 않은 국제사회에서 나라 간 힘의 균형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상대의 선의에 매달려 무력충돌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할 수 있는가. 믿었던 선의가 무너지는 순간 어설픈 평화는 깨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신뢰가 축적돼 있지 않거나 그 상대의 체제가 민주적 여론이 형성되기 어려운 독재 체제라면 그 웃음의 이면을 충분히 검증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은 우리에겐 분명히 위협임에도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이나 안보 태세는 가드를 너무 많이 내려놓고 있다. 5000만 국민의 안위를 설마와 요행에 맡겨 놓는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우리 주도의 통일 과정을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북한과는 같은 민족으로서 언젠가 분단 상황을 종식하기 위해 대화와 교류·협력도 필요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폐기하지 않는 이상 통일은 고사하고 우리 입에서 평화라는 말은 나올 수 없다.

그간 북핵 문제는 미국에 맡겨 놓고 대북 관계 개선에 치중해 온 정부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되는 양측 실무 회동에 참여자인지 촉매자인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서 다행이다. 국내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서 성과 도출에 급급해 우리 머리 위로 어정쩡한 흥정에 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깥 정세를 읽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했을 때, 조선의 왕은 강화도로, 남한산성으로, 남의 나라 외교공관으로 피신 다녔다. 피란도 못 간 백성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세에는 미·일 간의 밀약으로 나라는 결국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애치슨 라인 발표 이후 공산 세력의 남침으로 동족상잔도 겪었다. 유비무환의 정신 속에 자강의 길이 답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과의 결속, 그중에서도 미국과의 동맹 유지 강화는 한반도뿐 아니라,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기본 질서이자, 국민적 신념으로 지켜져 왔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생명의 터전 통일 코리아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의 의미가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유지·발전돼야 한다. 이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