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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05일(金)
‘강아지똥처럼 볼품없는’ 문간방서 ‘강아지똥처럼 아낌없는’ 글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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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갈 데 없는 권정생 작가에게 문간방을 내줬던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일직교회. 권 작가는 1968년부터 1983년까지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교회 종을 치는 종지기로 살았다.

권정생 ‘강아지똥’의 안동 조탑마을

해방되자 돌아온 아버지의 고향
일직교회 문간방서 종지기 16년
교회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

열병 앓으면서도 ‘강아지똥’ 집필
온마음 다해 50일 만에 완성시켜

울도 담도 없는 빌뱅이언덕 흙집
책과 이부자리가 가진것의 전부
10억원이 넘게 인세를 받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써달라고 유언


권정생을 닮은 그곳, 일직예배당 문간방과 빌뱅이 언덕 외딴집, 그곳에서 그는 글을 쓰고 아이들을 만났다. 청량리에서 떠나는 중앙선 첫차를 타고 경북 안동에 닿으니 오전 10시 20분쯤이다. 낯선 길을 물어물어 시골 버스를 타고 조탑 마을에 내리니 낮 12시가 넘었다. 햇볕이 따가운 한낮, 정류장에 서서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무성하게 자란 감자밭 옆으로 교회가 서 있다. 그리고 담벼락에 그려진 ‘강아지똥’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안동 일직면 조탑 마을 일직교회, 그 교회에 딸린 문간방. 동화작가 권정생이 살던 곳. 그 옛날 일직예배당도, 그가 살았던 두 칸짜리 토담집도, 새벽마다 일어나 치던 종도 사라진 지 오래다. 토담집 자리엔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 있고 새로 지은 종탑도 30년 세월에 군데군데 녹이 슨 채 늙어 가고 있다.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 아래 자리한 권정생 작가의 흙집. 권 작가는 1983년 여름에 이 집을 지어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東京) 변두리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돼 식구들과 함께 아버지 고향인 안동 일직으로 돌아왔지만 가진 것 없는 그들을 반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구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고, 권정생은 중학교도 못 가고 부산으로 돈 벌러 떠나야 했다. 하지만 객지 생활 5년 만인 1957년에 폐결핵에 늑막염까지 겹쳐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소작 농사를 지으며 얻게 된 농막이 그의 고향집이었다. 10년 남짓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 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장가가고 그는 혼자가 됐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그는 농막도 비워 줘야만 했다. 지상 위,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었다. 오갈 데 없는 그에게 교회에서 문간방을 내어주었다. 서향으로 지은 집이라 겨울만 되면 동상에 걸리고 여름엔 무척 더운 곳이었다. 권정생은 1968년부터 1983년 빌뱅이 언덕으로 이사 가기까지 16년 동안 교회 문간방에서 살았다. 날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종을 치는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이미 한쪽 콩팥을 떼어 내는 수술을 받은 몸이라 아침저녁으로 종을 치는 일이 그에게는 고단한 노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 1960년대만 해도 농촌 교회의 새벽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전깃불도 없고 석유램프 불을 켜 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석 달 동안 걸인이 돼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밤이면 들판에서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매다가도 아침이면 또 살기 위해 깡통을 들고 나섰다. 그 석 달 동안에도 길에서 성경책을 읽었고 그 시간이 일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했다. 죽음의 순간에, 아무도 없는 깜깜 밤중이나 이른 새벽에 혼자 깨어 만나는 그의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이었을까? “나의 신앙은 사람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족하다. 그를 사랑하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길이 된다”는 이야기에서 권정생의 하느님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글을 쓰는 시간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  빌뱅이 언덕 흙집 앞에 앉아있는 권정생 작가.

그리고 여기, 일직예배당에서 권정생은 아이들을 만났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예배만 끝나면 아이들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문간방으로 모여들었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TV도, 읽을 만한 책도 귀했던 그 시절에 교회는 학교였고 극장이었고 도서관이었다. 권정생은 부산 시절 재봉기 가게에서 일했을 때 익힌 솜씨로 손수 인형을 만들며 아이들과 연극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열에 들뜬 몸으로 써 나갔다. 아침에 보리쌀 두 홉을 냄비에 끓여 숟가락으로 세 등분을 금 그어 놓고 저녁까지 나눠 먹었다. ‘강아지똥’은 50일간의 고통 끝에 완성됐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내가 쓰는 동화는 차라리 그냥 ‘이야기’라 했으면 싶다. 서러운 사람에겐 남이 들려주는 서러운 이야기를 들으면 한결 위안이 되고 그것이 조그만 희망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맺힌 이야기가 있으면 누구에겐가 들려주고 싶듯이 그렇게 동화를 썼는지도 모른다.”(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열에 들뜬 몸으로 하루 글을 쓰면 이틀은 누워 있어야 하는 몸으로 ‘강아지똥’을 썼다. 참새도, 병아리 떼를 몰고 다니는 암탉도 더럽다고 쳐다도 안 보는 강아지똥이 주인공인 이야기.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응모했을 때도 처음에는 심사위원들이 제목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시절의 동화는 온통 무지개와 왕자와 공주 이야기였다. 1974년에 단편들을 모아 책으로 펴낼 때도 제목 때문에 말이 많았다. 어렵게 겨우 책이 나왔는데, 제목은 강아지똥이었지만 표지 그림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공주 그림이었다.

그는 문간방에 모여든 가난한 시골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외면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강아지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회 문간방에서 추위와 더위에 웅크리고 있는 권정생, 시골 골목길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똥. 그의 삶이기도 했고, 삶의 공간이기도 했던 교회 문간방 시절이 고스란히 이야기에 담겨 있다. 그렇게 권정생은 강아지똥 이야기로 세상에 왔고 죽는 순간까지 강아지똥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제가 돈이 생기게 되면, 건강해진다면, 사회가 알아주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각혈을 해 가면서도 공부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 아이도, 가발 공장 가 있는 그 애도, 방직공장 가서 나를 위해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있다는 그 애도, 아침저녁 찾아와서 보채는 이 많은 제 친구는 나를 마다하고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선생님,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는 말에 온몸으로 힘껏 민들레 싹을 껴안았던 강아지똥처럼,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피워 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공간, 빌뱅이 언덕 외딴집. 교회 문간방이랑 다를 게 없는 두 칸짜리 흙집. 마을 가장 안쪽, 상엿집 옆 헛간을 지으려고 다져 놓은 터에 울도 담도 없이 지은 집. 방문을 열면 책이 꽉 쌓여 있는 벽이 마주 보였다. 그 방 한쪽에 한 칸짜리 싱크대와 부엌살림 몇 가지가 있었고, 다른 방 한 칸은 작은 텔레비전 한 대와 벽에 걸린 옷가지 몇 개, 이부자리가 전부였다. 한 사람 누우면 꽉 차는 방. 살아생전에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곳에서도 글을 쓰고, 찾아오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주고, 편지 좀 써 달라고 오는 이웃 할머니·할아버지를 만났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불쌍한 종지기 아재였고, 권 집사였다. 그가 떠난 뒤에야 알게 됐다. 인세로 받은 돈이 10억 원이 넘는다는 걸. 그 돈 모두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일직교회를 나와 천천히 10분쯤 골목길을 걸었다. 낮은 담장과 골목길이 그림책 강아지똥에 나오는 골목길 같다. 그 골목길 끝에 저 혼자 오두마니 남아 있는 외딴집. 그를 닮은 빌뱅이 언덕 외딴집에 잠시 머물렀다. 강아지똥을 닮은 집, 강아지똥처럼 살다 간 권정생. 권정생처럼 앉아 있어 보고 싶어서, 권정생처럼 거닐어 보고 싶어서, 단 한 순간이라도 그가 바라보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서성여 보았다.

이혜숙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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