亡者자택 청소부·간병인·소방관… ‘묵직한 펜’을 들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 중심의 르포성 에세이 붐

삶·죽음 경계서 일하는 저자들
사회 고발성 이야기도 쏟아내

작은 목소리들 표출 통로 역할
함량 미달된 책 속출할 우려도

1980년대 ‘르포 문학’의 21세기형 재현인가. 최근 르포타주(reportage)와 에세이(essay)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논픽션들이 잇따라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망자(亡者)의 집을 주로 청소하는 특수청소 서비스회사 운영자, 치매 노인 간병인, 경비원 노인, 소방관 등이 저자로 나섰다. 전통적인 작가군(群)에 속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등장은 인터넷과 함께 찾아온 글쓰기 대중화 시대의 한 단면이다. 다만, 적잖은 ‘비전통적 작가’들이 다분히 신변잡기적이고 사적인 감상을 표현하는 데 머문 것과 달리 이들의 책은 민생 현장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있다. 삶과 죽음, 존엄, ‘갑질’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사회 고발성 이야기도 쏟아낸다.

◇‘감상 타령’ 넘어선 르포성 에세이들 = 민생 현장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직업인이 저자로 나선 르포성 에세이는 올해 들어 끊이지 않고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출간된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지음, 김영사)와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고재욱 글·박정은 그림, 웅진지식하우스), ‘오늘도 구하겠습니다!’(조이상 지음, 푸른향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연초부터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천착하게 했다. 생사의 경계에서 일하는 저자들의 책이 묵직한 울림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다. 이들이 지난 3월 출간, 1만 부 넘게 팔린 ‘임계장 이야기’(조정진 지음, 후마니타스)의 뒤를 이어 르포성 에세이 붐을 일으킬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들 르포성 에세이의 힘은 ‘현장’과 ‘사람’에서 나온다. 우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또 다른 우리’의 생생한 이야기와 목소리는 공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죽은 자의 집 청소’에는 이 시대의 죽음, 특히 고독한 죽음이 어떤 모습을 띠는지 잘 그려져 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젊은이의 D-데이는 요금 체납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던 날이었다. 저자는 “이 비정한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삶도 끝나는 것일까 …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한 남자는 자살에 앞서 저자에게 사후 집 청소 견적을 문의했다. 그의 생전 마지막 통화자가 된 저자는 “자살을 결심하고 그 뒤에 수습할 일까지 염려한 남자 …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연이 있기에 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밀어붙인 것만으로 모자라,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죽고 남겨진 것까지 미리 감당하라고 몰아세울까?”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뜻하는 ‘임계장’의 이야기가 노인 빈곤, 일반인 간의 갑질과 폭력이 먼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 가까이서 벌어지는 사건임을 고발한 것과 통한다. 7년간 100명 넘는 치매 노인의 죽음을 지켜본 간병인의 기록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도 다르지 않다. 이 책에는 1년째 연락이 끊긴 아들을 기다리며 온종일 요양원 출입문 앞을 지키는 할아버지, 치매로 거동은 물론 말도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 ‘왜 빨리 죽지 않느냐’며 울부짖는 아들 등 스치듯 지나칠 수 없는 사연들이 빼곡히 담겼다.

5년 차 소방관이 쓴 ‘오늘도 구하겠습니다!’에는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도 불법 주정차 차량 등 장애물을 피해 돌아가야 하는 119 대원들의 고충, 소명의식 하나로 버티면서도 지역 주민들의 탄원 대상이 되는 권역 외상센터의 비애 등이 담겨 있다.

◇“르포성 에세이, 책 다양화에 도움 … 무분별 출간은 지양해야” = 과거에도 의사·변호사 등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사례는 있었지만, 현장 직업인이라는 비전통적 작가군의 부상은 미디어 환경 변화의 산물로 분석된다. 할 말이 있을 때 대리인이나 대변자를 찾는 대신 직접 블로그나 유튜브로 목소리를 내는 게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르포성 에세이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다양하고 작은 목소리가 표출되는 통로가 될지 주목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다양한 목소리가 표현되고, 독자의 선택 폭이 확장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 평론가는 “다만, 함량 미달의 책까지 무분별하게 출간될 경우 오히려 독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