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2.1.18 화요일
전광판
Hot Click
오피니언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21년 11월 26일(金)
‘화단의 이방인’ 최욱경을 보다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색·형태·선 그 자체가 작품
추상미술 향한 모더니스트

강렬한 채색·대담한 붓 구사
남성 중심 화단에 대한 도전

‘일어나라! 더 너를 불태워라’
예술도 삶도 불꽃같이 ‘활활’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최욱경 전시가 10월 27일부터 열리고 있다. 1980년대에 최욱경과 같은 대학에서 재직한 필자로서는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감개무량했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활동하다 1970년대 말 귀국한 최욱경은 대형 화면에 강렬한 채색과 붓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대담한 여류화가’로 알려졌다. 지금은 여성 화가라는 말도 젠더 문제로 사용하기 조심스럽지만, 당시에는 여류화가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사용됐다. ‘대담한 여류화가’였지만 그의 그림에 대해 한국 화단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미국문화원에서 가진 귀국 개인전에서 미국적 체취가 너무 강하다는 평, 심지어 버터 냄새가 난다는 말까지 듣고 그는 화단의 편협함에 상처를 입었다.

최욱경은 어려서부터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유명했다. 초등학생일 때 당대의 유명한 화가 김기창, 박래현 화실을 다녔고, 이화여중과 서울예고에서는 김흥수, 정창섭, 김창열과 같은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지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나와 1963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뉴햄프셔대 등에서 교수로 있었다. 최욱경이 미국에 갔을 때 그곳 화단에서는 순수한 색채와 휩쓸어가는 듯한 붓 터치, 대형 캔버스가 특징인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그 흐름에 동참했다.

1979년에 한국에 돌아와 처음 영남대에 재직할 때 최욱경을 사로잡은 것은 경상도 지방의 산과 능선, 거제도 학동 앞바다의 물빛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태양광선 속에서 아름다운 산수의 색채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화면에는 초기의 열정적인 색채가 조금씩 다듬어져 곱고 부드러운 색채와 유연한 선, 형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잡고 정착하는 줄 알았던 최욱경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은 나이 45세이던 1985년이다. 그가 남긴 작품은 400여 점. 오늘날 한국 화단이 국제적이 되고 많은 미술가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 최욱경도 조금 늦게 태어났더라면 훨씬 더 각광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과거 여성 화가들의 삶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최욱경보다 앞서 활약했던 여성 화가 나혜석, 천경자를 떠올리게 된다.

글과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사회의 관습과 거리가 멀었던 첫 번째 여성 화가는 나혜석(1896∼1948)이었다. 1918년 일본에서 도쿄(東京)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3년 후에 가진 개인전에는 관람객이 약 5000명(당시로서는 대단한 숫자)이었을 정도로 나혜석은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신여성 화가였다. 1931년에 이혼을 하면서 나혜석은 공개적으로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고 남녀의 불평등을 지적하면서 여성은 독립된 인간으로서 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전통적 가치를 전복하는 이런 공개적인 고발을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모두가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결국, 나혜석은 서울시립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했다. 신여성 나혜석의 개인적 고난은 재능 있는 여성 화가의 삶이란 결코 평범할 수 없음을 일반인들에게 각인시켰다.

나혜석보다 28세 아래인 천경자(1924∼2015)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울 무렵에도 여전히 여성 화가란 드문 존재였다. 천경자는 처음에는 뱀을 그리는 여성 화가로 관심을 모았다. 국전에서 상을 탄 ‘생태’(1950∼1951)에서 그는 비단 허리띠인 줄 알고 집으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친구 화자를 생각하고 33마리의 뱀을 그렸다. 그러다 당시 자신이 사랑하던 유부남 신문기자가 뱀띠이며 35세라는 것을 알고는 나이에 맞춰 두 마리를 덧붙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감미롭고 화사한 색채와 농밀한 꽃향기를 느끼게 하는 그림 속에 천경자는 길고 커다란 눈에서 요기가 느껴지는 여성의 분신으로 나타난다.

천경자 작품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솔직하고 맛깔스러운 글솜씨를 보여주는 그의 여러 권의 수필집이 나오면서였다. 천경자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한 여인의 꿈과 정한(情恨), 그리고 삶이라고 했다. 그 후에도 원시적인 열대 동물과 꽃 등의 환상적인 그림을 그렸던 천경자는, 고독하지만 사회의 규범에 상관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성 화가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미지 중심의 작품을 그렸던 천경자와 달리 최욱경은 색·형태·선 자체로 작품이 되는 추상미술을 행한 모더니스트였다. 따라서 최욱경의 작품은 천경자와 같은 대중적 이해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모더니스트처럼 자신이 남과 다름을 늘 의식했던 화가였다. 거대한 화면에 강렬한 채색과 대담한 붓의 구사는 그에게는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남성을 넘어서는 도전이었고, 또 한 여성 화가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의 화실에는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보헤미안처럼 차리고 다니던 그를 평론가 이경성은 한국 화단의 ‘이방인’이라고 불렀다.
[ 많이 본 기사 ]
▶ “이재명은 본인이 전과4범…李 육성도 틀어야 형평”
▶ 현역 여군 대위, 집에서 유서 남기고 숨진 채 발견
▶ 김건희 팬카페 회원 급증… 방송 이후 200여명 → 1만명
▶ 짝퉁명품 입은 송지아 “무지했다…깊이 반성”
▶ 회장직 건다더니 ‘매각 작업 난국’… 국가산업재편 휘청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현역 여군 대위, 집에서 유서 남기..
조국 딸 경상대병원서도 레지던트 불..
‘알박기 인사’ 아니라는 박범계…검찰..
尹 “선대위 해체하며 노력한 2주…퇴..
크리스마스에 모텔서 초등학생 성폭..
topnew_title
topnews_photo 국회 기자회견, 국힘 선대본부서 지원…형·형수에 “개XX 찌질이” 34개 파일김건희 ‘7시간 통화’ 공개에 맞불 성격…페북서 통째로 유포 ..
mark“초과이익환수 조항 삭제 지시 갑자기 내려왔다”
mark尹, 조직 없애 ‘무속’ 논란 돌파…‘李조폭연루·욕설’ 의혹 역공
“이재명은 본인이 전과4범…李 육성도 틀어야 형평”
[속보]‘대장동 40억 수뢰 혐의’ 최윤길 전 성남시의장 구..
이준석 정체 드러난 JTBC ‘가면토론회’ 2회만에 방송중..
line
special news 짝퉁명품 입은 송지아 “무지했다…깊이 반성”
넷플릭스 예능물 ‘솔로지옥’에 출연한 유튜버 송지아가 짝퉁 명품 착용 논란을 사과했다.송지아는 17일 인..

line
김건희 팬카페 회원 급증… 방송 이후 200여명 → 1만명
‘김지은 고통에 유감’ 이수정 “국힘 여성본부 고문직 사..
회장직 건다더니 ‘매각 작업 난국’… 국가산업재편 휘청
photo_news
티아라 소연, 9세 연하 축구선수 조유민과 11월..
photo_news
설현, 의미심장 글…“인간이 싫어진다, 싫다 못..
line
[10문10답]
illust
우회전 하기전… 보행자 발 횡단보도 걸쳐있다면 무조건 스톱..

illust
李·尹양자토론, 방송사 27일 제안에 與 “수용”·野 “31일 하자”
topnew_title
number 현역 여군 대위, 집에서 유서 남기고 숨진 채 발..
조국 딸 경상대병원서도 레지던트 불합격…병원..
‘알박기 인사’ 아니라는 박범계…검찰 내부는 ‘부..
尹 “선대위 해체하며 노력한 2주…퇴근 인사하며..
hot_photo
강동희 前감독 법인 자금횡령 의..
hot_photo
심석희 올림픽 못 간다…법원, 가..
hot_photo
블랙핑크 ‘러브식 걸스’ 스포티파..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1년 1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