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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팝·콘 게재 일자 : 2022년 07월 05일(火)
실험적 음악·주체적 가사… 팬덤 폭증 ‘4세대 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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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팝·콘
- ‘음반 초동판매’ 화력 세지는 여성 아티스트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에스파는 세련된 음악과 ‘당당함’을 앞세운 걸크러시 이미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인 아이브·케플러·르세라핌
발매 첫주에 30만장 이상 판매
북미 등 글로벌 팬층 두터워지고
애교 아닌 ‘당당함의 정서’ 강조
정교하고 세련된 팝사운드 진화


K-팝 아이돌 산업에서 유래한 전문용어(?) 중에 ‘초동판매량’이라는 표현이 있다. 대개 앨범 발매 후 첫 주간의 판매량을 의미하는데 팬덤의 규모와 소위 ‘화력’이라 불리는 구매력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척도로 여겨진다. 각종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는 K-팝 팬덤에게 있어서는 총판매량에 못지않은 의미 있는 수치이며, 연말 시상식이나 차트 1위의 중요한 성취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초동’에 대한 관심은 대중음악 역사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0년대 이후 앨범 판매량이 한터나 가온과 같은 업체들에 의해 비교적 정확하게 집계되기 시작하면서 공식적인 ‘초동 기록’의 역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기록의 대부분은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NCT 등 보이그룹이나 임영웅, 백현 등 아이돌 남성 솔로 가수들에 의해 채워졌고 초동 50만 장을 기록한 여성 가수는 현재까지 블랙핑크와 리사 둘뿐이다.

애초에 초동 기록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적극적인 고관여층의 음악 소비자, 그러니까 팬덤의 소비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열렬한 지지층을 보유한 남성 아티스트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해온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경향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K-팝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2009년에 발매된 보아의 영어 앨범 ‘BoA’ 이래 총 스물여덟 개의 팀(유닛 포함)이 미국 빌보드 200차트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중에 여성 아티스트는 고작 여덟 팀에 불과하다. 대형 규모의 글로벌 투어 공연의 숫자에서는 더 큰 격차가 관찰된다. 대중음악 산업의 오랜 속설인 ‘남자가수는 팬덤픽, 여자가수는 대중픽’이라는 말도 이렇게 수치를 보면 더더욱 쉽게 와닿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유의미한 변화의 경향이 포착되고 있다. 2017년에는 트와이스가 걸그룹 최초로 초동 10만 장을 달성했고 2년 후인 2019년에는 태연이 솔로 가수 최초로 이 기록에 합류하며 여성 가수 ‘팬덤’의 성장이 수치로 입증되기 시작했다. 이후 보다 많은 걸그룹 및 여성 가수들이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음반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남성 아티스트에 필적하는 화력을 뽐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블랙핑크나 레드벨벳 등 검증된 팀뿐 아니라 신인급의 걸그룹들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한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걸그룹 네 팀이 30만 장 이상의 초동 판매를 달성했는데 이 중 아이브, 케플러, 르세라핌은 모두 두 장 이하의 앨범을 낸 신인급 팀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K-팝 시장 전체의 비약적 성장이다.

일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한 하위문화의 성격을 가진 아이돌 산업이 음악 산업 자체를 움직이는 주류 산업으로 격상된 데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한 산업으로 거듭났고 이에 따라 팬덤의 규모나 응집력도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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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아이브(위)와 르세라핌(아래). 각 소속사 제공

또 하나는 걸그룹 팬덤의 성장과 성격 변화다. 과거 걸그룹은 소위 ‘행사용 연예인’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고, 그에 따라 쉽고 대중적인 히트곡을 중심으로 남성팬의 취향을 저격하는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바뀌었다. 걸그룹의 음악은 보이그룹 못지않게 다양하고 실험적이며, 퍼포먼스 역시 단순히 남성의 취향에 복무하지 않는 복합적인 이미지를 전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소위 ‘걸크러시’라 불리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 역시 과거에는 일부 걸그룹이나 솔로 가수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사실상 모든 여성 K-팝 가수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K-팝 걸그룹의 팬덤도 10대 여성이나 삼촌팬을 넘어 구매력이 높은 20~30대 여성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로 최근 걸그룹의 음악에도 이들의 취향이 적극 반영돼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역시 글로벌 팬덤, 그중에서도 북미 팬덤의 급성장이다. 4세대로 구분되는 최근의 K-팝 걸그룹은 데뷔부터 공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상급 음반사와 프로모터들도 적극적으로 이들과의 협업을 꾀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걸그룹 중 한 팀은 메타버스 아이돌을 표방한 에스파다.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세계관 안에서 ‘현실’ 멤버와 ‘가상’ 멤버가 공존하는 4+4 개념의 걸그룹이다. 언뜻 그 개념이 쉬이 와닿지 않지만 강렬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내세운 ‘Next Level’로 대중과 평단 양쪽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얼마 전에는 첫 영어 싱글인 ‘Life’s Too Short’를 발매했는데 심플하고 세련된 구성의 음악은 미국 팝 음악 플레이리스트 사이에 끼워 넣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걸크러시 이미지와 ‘Z세대’의 주체적이고 뚜렷한 주관이 담긴 가사, 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권 취향의 사운드 등은 최근 데뷔한 걸그룹들의 공통된 전략이기도 하다.

BTS를 키워낸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의 걸그룹 르세라핌의 데뷔곡 ‘Fearless’의 중독적인 그루브와 낮게 깔리는 음색이 바로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시연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리듬이나 편곡의 문제만은 아니다. 청량함을 내세운 아이브의 ‘LOVE DIVE’나 케플러의 ‘Up!’에서도 아기자기함이나 애교보다는 시원스러운 발랄함이 더 강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그룹들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의 정서는 앞서 언급한 주력 시장의 변화에 따른 전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큰 틀에서는 수년간 K-팝의 가장 성공적인 걸그룹으로 군림해 온 블랙핑크 이후 만들어진 K-팝 걸그룹의 판도, 쉽게 말해 ‘포스트 블랙핑크’의 흐름을 이어받아 주도권을 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말할 수 있다. 귀여운 애교가 아닌 사랑스러운 건강미, 노골적인 섹시미가 아닌 고혹적인 관능미, 보다 세련되고 정교하게 진화된 팝 사운드와 보이그룹과 비견되는 강력한 팬덤을 거느린 4세대 걸그룹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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