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재난대피 안내방송의 국제적 기준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2-11-04 11:32
기자 정보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폰트
공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재평 대림대 교수 겸 음향연구소장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156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이태원 핼러윈 축제 참사는 전 국민을 또 한 번 비통하게 만들었다. 그 원인은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조사되고 있겠지만, 필자는 대중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의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 방송 시스템 미비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고 당시 현장의 좁은 골목길에서 시민들이 위험 상황을 외치고, 출동한 경찰이 확성기를 이용해 비상 상황을 알려도 길거리 클럽과 상가에서 설치한 광고용 외부 스피커의 큰 소리와 뒤엉켜 비상 상황은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법으로 설치된 스피커에 대한 규정도 제재도 없었고,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소음 규제도 없었다. 공공장소에서의 방송에 대한 선진화된 기준과 이에 따라 설치된 방송 시설만 있었더라도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지하철에서 도착 역을 알리는 스피커 방송이 나와도 승객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 안내를 들으면서도 영상 모니터에 나오는 안내 자막을 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지하철 객실 내의 울림과 소음으로 인해 안내 방송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많이 모이는 대형 공공 놀이시설도 그렇다. 안내 방송이 아예 전달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고, 전달되는 곳이라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안내 방송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생명을 잃는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공공시설 곳곳에 잠재해 있다.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의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공장소의 안내 방송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필자는 여러 차례 언론 기고를 통해 호소해 왔다.

우리나라 방송 음향 시설 기준은 스피커 출력 중심으로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소리가 아무리 커도 시설 이용자들의 귀에 명료하게 들리지 않으면 소음이 된다. 불법으로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한 제재 규정도 없다.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면, 더구나 재난을 알리는 긴급 대피 방송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선진국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소리가 작아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명확성을 중심으로 안내 방송 규정이 마련돼 있다. 주변의 소음과 공간의 소리 특성까지 고려해 공공장소와 시설은 높은 소리 명확성을 요구하고, 화장실도 최소한의 소리 명확성을 기준으로 방송 음향 시스템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은 화재 발생 시 재난 대피 방송을 골든타임에 명료도 높은 소리로 안내하도록 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지진 등으로 전력이 차단되더라도 대피할 수 있는 시간에는 비상전력으로 안내 방송을 내보내게 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안내 방송에 대한 정량적 시설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최근의 대형 참사를 경험하면서 재난 방송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의 안내 방송에 대한 선진화된 기준안 마련이 절실함을 느낀다. ‘스피커 출력이 얼마 이상이면 되고, 소리가 유효하게 경보 되면 된다’는 막연한 지침은 조속히 버려야 한다.

환경 변화와 도시화에 따른 각종 소음이 넘치는 다양한 공공시설로 인해 재난의 빈도는 잦고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커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안내 방송의 국제적 기준 도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한 것 같다.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요뉴스
기사 댓글

AD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