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칙 바탕 새 노 · 정 관계 정립… ‘파업 만능주의’ 끝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엄정한 법 집행’ 강조 9일 오전 한덕수(오른쪽)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화물연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은 불법파업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 전문가들 ‘화물연대 투표’ 분석

“노동계 불법 강경파업 나서면
역대 정부는 정치적 타협 시도
윤정부 ‘법대로’ 선례 만들어”

시멘트 출하량 96%까지 회복
재고바닥 주유소 사흘째 감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9일 오전 운송거부 복귀 조합원 투표에 앞서 그동안 거부해왔던 정부안(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법과 원칙’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노동계의 파업 만능주의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고 법과 원칙을 통한 새로운 노·정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물연대의 조합원 투표 속에 이미 이탈했던 조합원과 비조합원들이 속속 운행에 동참하고 있어 물류망은 빠르게 정상화하는 모습이다.

이날 화물연대는 조합원 투표에 앞서 낸 성명을 통해 기존에 주장했던 ‘안전운임제 영구화’ 대신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입법’을 정부에 요구했다. 당정이 화물연대 운송거부 초기부터 요구했던 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 초반부터 대화 테이블 대신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업무개시명령 등으로 강하게 대응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그동안 노동계 파업이 확산하면 정부는 일단 대화 자리를 만들어 노조와 정치적 타협을 하려고 했다”며 “반면 이번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에선 정부가 노조의 요구에 법과 절차대로 하는 전례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2002년 설립된 화물연대는 국내 물류망을 멈춘 후 정부를 상대로 요구조건을 내거는 방식으로 운송거부에 들어갔다. 국민과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며 정치권은 여론에 따라 일관된 대응을 펴기 어려웠다. 윤석열 정부 또한 지난 6월 운송거부 당시에는 합의를 통해 일단락 짓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6개월 만에 다시 발생한 운송거부 사태에선 초반부터 ‘법과 원칙’과 함께 ‘무관용’ 입장을 내며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다. 6월에는 5차례 노정 협상을 진행했지만, 이번엔 단 2차례만 대화 자리를 가졌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초반부터 법과 원칙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견지했다”며 “앞으로도 법과 원칙이란 테두리 안에서 이해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존에 정치권과 노조가 거래하는 방식의 관계에서 피해는 국민과 기업이 입었다”며 “일부 노조의 강성적인 모습은 외국 기업의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소였던 만큼 이번 기회에 새로운 노·정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계는 정상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로 산업계 전반에 4조 원 규모(정부 추산)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그동안 멈춰 섰던 산업현장도 빠른 속도로 정상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멘트업계는 이미 사실상 정상화됐다. 8일 기준 시멘트 출하량은 18만t으로, 평년 12월 평균(18만8000t)의 96%까지 회복했다. 레미콘 출하량도 평년의 60∼70% 수준까지 올라왔다.

운송거부 여파로 작업을 중단했던 건설 현장도 줄어들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공사현장 중단율은 지난 2일 59%까지 치솟았지만, 8일 기준으로 51.9%(전국 1666개 공사 현장 중 864곳 중단)로 떨어졌다. 공사 중단 현장 수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7일까지 7일 연속(영업일 기준) 증가했으나, 8일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또 재고 소진 주유소는 지난 5일 96개 이후 6일 81개, 7일 78개, 8일 61개 등 3일 연속 감소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 직후 5만4000㎘까지 떨어졌던 정유 출하량은 10만7000㎘로 평상시(10만9800㎘)의 97% 수준까지 회복됐다. 석유화학업계도 전남 광양항 화물연대 철수 등에 힘입어 수출 물량은 평시 대비 25%, 내수 물량은 75% 수준까지 출하량이 올라왔다.

정철순·김성훈·이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