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쪄도 뺄 순 없지… 살맛나는 ‘기름칠’[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4-05-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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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비계의 매력

고기-가죽 사이 피하지방 덩어리 일컫는 말
감칠맛과 어우러지는 ‘제6의 맛’ 꼽히기도
돼지기름으로 만든 ‘라드’, 고급식용유 역할
볶음류 많은 중화요리 필수 식재료로 활용


대한민국 외식업계가 때아닌 ‘비계’ 논쟁으로 뜨겁다. 발단은 지난달 말 제주도 서귀포 중문의 한 흑돼지 식당을 찾은 손님(관광객)이 제공 받은 삼겹살이 대부분 비계 일색이었다며 인터넷에 사진과 글을 올리며 항의한 것에서 비롯했다. 사진 속 고기는 올린 이의 주장처럼 하얀 비계가 대부분이었다(해당 음식점 측은 살코기가 붙은 부분은 손님이 다 먹고 삼겹살 끝부분 비계 사진만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연을 전해 들은 네티즌들은 해당 식당이 악덕 업체라 거들며 제주도의 높은 물가까지 함께 지적했다. 이후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사례가 이어졌고 급기야 오영훈 제주지사가 나서서 사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비계는 삼겹살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긴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삼겹살 판매 매뉴얼(2023년)에 따르면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삼겹살의 경우, 지방 1㎝ 이하, 오겹살은 1.5㎝ 이하로 팔고 나머지는 제거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에 따르자면 메뉴에 삼겹살을 걸어놓고 비계만 잔뜩 준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문제는 비계가 원래 맛이 좋다는 것. 당장 가장 인기가 많은 돼지고기 식육 부위를 보면 삼겹살, 오겹살, 목심, 항정살 등에 큼지막한 비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촘촘히 박혀있다. 그것 때문에 일부 비계를 선호하는 이들은 아무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제주지사 역시 제주도의 식문화를 언급하며 차이를 고려해 달라고도 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형제집 볶음밥



비계는 고기와 가죽 사이에 붙은 피하 지방 덩어리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돼지고기에 가장 많고, 소고기도 우삼겹이라 불리는 부위에 많이 붙어있다. 내장 등 다른 쪽에 있는 지방은 비계라 부르지 않는다. 비계는 감칠맛과 지방맛이 잘 어우러진 돼지고기 맛의 핵심으로 꼽힌다. 기름진 맛인 지방맛(Oleogustus)은 인간의 혀로 느낄 수 있는 과학적 의미의 맛 중 하나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기본 4미에다 1990년대 진입한 제5의 맛 ‘감칠맛’(umami)에 이어 ‘제6의 맛’으로 꼽힌다. 참고로 매운맛과 떫은맛은 미각이 아닌 촉각에 속한다.

비계의 맛은 지방맛이라 아무리 잘 숙성시킨 살코기라도 지방이 없으면 느낄 수 없다. 육류 숙성은 감칠맛을 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또한 살코기 없이 비계만 있는 경우에도 감칠맛까지 즐길 수 없어 느끼하게 다가온다. 비계는 비계대로, 살코기는 또 그 나름 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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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돼지비계는 식용유로 쓰여왔다. 특히 빈대떡에 비계를 뭉텅뭉텅 썰어놓고 부치면 풍미가 더해져 얼핏 고기전 맛을 낸다. 뭔가 기름기가 부족한 콩비지 찌개에 잘게 썬 비계를 넣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 중국음식점에선 돼지비계에서 지방을 추출한 라드(lard)로 요리를 했다. 식물성 유지인 식용유보다 훨씬 고소한 풍미를 내니 요리를 볶거나 튀길 때 기본 맛이 좋았다. 그냥 달걀과 함께 고두밥을 볶아도 근사한 볶음밥이 된다. 1980∼1990년대 쇼트닝과 우지파동을 겪은 후, 대부분의 중국음식점은 라드 대신 대두유 등 식물성 식용유로 바꿔서 쓰고 있다.

국내에선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식재료지만 라드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고형 식용유다. 중국은 물론,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라드를 즐겨 쓴다. 아예 버터처럼 빵에 발라먹는 용도로 출시하기도 한다. 역사도 깊다. 식물의 씨앗을 압착해 만드는 기름은 고압 추출 등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까닭에 가축의 지방을 녹인 라드나 탤로(양이나 소기름)를 주요 식용유로 썼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개화식당 간짜장



일찍이 희랍신화에도 비계가 제물로 언급되며 유럽의 제빵 문화에도 버터 대신 돼지기름을 사용하는 방식은 언제나 빠지지 않았다. 프랑스 콩피, 러시아 살로, 이탈리아 라르도(Lardo), 중국 쓰촨성의 유저육(油底肉) 등이 라드를 주로 사용한 음식이다. 동파육 등에는 아예 비계를 붙인 채 썰어서 썼다. 공식적으로는 1000여 년간 육류 소비가 이뤄지지 않았던 일본에서도 메이지 유신 이후 라드를 사용한 다양한 튀김 요리가 발달하는데 이때 유채 기름이나 라드를 썼다. 일본 대중식 중 가장 유명한 라멘에도 큼지막한 비계가 붙은 삼겹살 덩어리 차슈(叉燒)가 들어간다. 조리과정에서 라드를 많이 쓰는데 아예 먹기 전에 따로 추가로 넣어 먹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기름을 쓰는 요리가 적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소기름 우지(牛脂)를 종종 써오다가 육류 생산과 소비가 향상된 근대에 들어서야 화교들을 중심으로 돼지기름 돈지(豚脂)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우지·돈지 파동 등 일련의 사고로 인한 부정적 인식 탓에 식당들은 돼지기름 대신 모조리 식물성 유지로 바꾸고 말았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딘타이펑 샤오룽바오



하지만 돼지기름은 체내 합성이 되지 않는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고, 인간의 체온 정도에 녹아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지방이라 오히려 식물성 유지를 보존처리한 트랜스 지방보다 건강에 좋다. 심지어 선입견과는 달리 다이어트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라드에는 구체적으로 포화지방이 약 40%, 불포화지방인 올레산(오메가9)이 50%, 리놀레산(오메가6) 9%, 알파리놀레산(오메가3) 1%의 구성으로 들었다. 불포화지방이 약 60%를 차지하는 셈이다. 돼지비계에서 나왔지만 고급 식물성 기름인 올리브나 아보카도 오일의 성분들과 같다. 게다가 성장기 아동 및 성인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는 비타민D가 하루 권장량의 4배 정도(100g당) 들어있다. 이외에도 비타민E, 비타민B1, B2 등을 다양하게 섭취할 수 있으며 동맥경화 및 지방간 예방에 좋은 콜린도 풍부하다고 한다.

요즘에도 라드를 많이 쓰는 곳이 있는데 바로 딤섬(點心) 집이다. 중국이나 대만 현지식 샤오룽바오(小籠包)를 맛볼 때 ‘육즙’이 가득 들었다고 평하는데 사실은 그게 육즙이 아니고 라드다. 라드를 만두소에 섞어 빚으면 뜨거운 온도에 익으면서 지방맛을 가득 품은 액체로 변한다. 낮은 용점(鎔點)을 지닌 돼지기름의 물성을 응용한 일종의 분자요리라 할 수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초류향 동파육



이처럼 돼지비계는 오랫동안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랑받아온 식재료다. 아니, 다양한 용도로 썼다. 추출이 쉽고 구할 곳이 많은 까닭에 유럽에선 이전에 산업적으로도 유용한 물품이었다. 로마군은 보급품으로 돼지기름을 받았다. 물론 식량의 용도였지만 마차 바퀴에 윤활유로도 썼고 동상 방지에 쓰기도 했다. 트거나 갈라진 피부에 약으로 발랐다. 석유 유지로 만든 바셀린과 같은 이치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라 동의보감에 돼지기름을 바르라고 권하기도 했다. “돼지족발 등을 끓여 식힌 기름을 바르면 추위에 갈라진 피부에 좋다”고 언급돼 있다. 18세기부터는 유럽에서 돼지기름 대신 대량으로 포획한 고래기름으로 거리 가로등을 밝혔지만 이전에는 가정에서도 대부분 돼지기름을 썼다고 한다.

돼지기름 같은 지방 종류는 인체에 열량을 재빨리 공급할 수 있는 음식이다. 추운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돼지나 소, 양의 기름을 굳힌 ‘살로(Сало)’ 같은 비계 음식이 발달한 이유다. 다만 현대에 들어 콩이나 올리브, 유채, 야자 등 식물성 지방에서 기름(식용유)을 추출해 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용도가 축소됐을 뿐이다. 특히 목화씨에서 추출한 면실유와 유채에서 나온 카놀라유의 대량생산이 라드의 발달을 가로막았다. 라드보다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라드는 고급 식용유로서 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물성 지방 특유의 풍미가 식물성 유지보다 탁월한 덕이다.

삼겹살을 구울 때 흘러나온 기름에 김치와 고사리 따위를 굽고 거기다 밥을 볶아보면 안다. 고급 참기름과는 또 다른 맛이 재료에 스민다. 녹두나 동부콩 등으로 전을 부칠 때 비계를 쓰는 이유가 단박에 이해된다. 영국인들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기본은 ‘베이컨 기름에 구운 달걀 프라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국내에선 다시 라드를 찾는 분위기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맛 때문에 다시 라드를 쓴다는 것. 시중 중국음식점에서 라드에 대파를 썰어넣고 파기름을 만드는 과정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리연구가 겸 방송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주목받은 ‘연돈’ 등 인기 돈가스집도 돼지기름을 사용해 튀기는 것이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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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는 죄가 없다. 단지 맛있는 식재료였을 뿐이다. 다만 모든 음식이 그렇듯 다른 재료와 균형을 맞춰야 그 맛이 서로 수렴 상승하게 마련이다. 삼겹살을 주문한 손님에게 “맛있다”며 비계만 잔뜩 든 고기를 주는 것은 당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삼겹살도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어우러졌기에 맛이 좋은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지방맛의 총아’ 비계가 살짝 고백하는 듯하다. “적당히 넣으면 맛이 좋아져유(油).”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개화식당 = 평택 통복시장에서 반백 년간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화상 노포다. 깐풍기와 간짜장, 볶음밥을 비롯, 많은 메뉴가 있다. 짬뽕은 옛날식 고기짬뽕인데 얼큰하고도 고소하다. 볶음밥은 밥알이 하나같이 알알이 살아있다. 별로 든 것도 없는데 한입 떠 넣으면 풍성한 맛이 느껴진다.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라드로 볶고 튀겨 낸 덕이다.평택시 통복시장로 6번길 2. 짜장면 8000원.

◇천진반점 = 볶음밥과 짜장면이 옛날 맛 그대로. 당연히 예전부터 썼던 라드 때문이다. 요리를 은근히 지배하는 기름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볶음밥 밥알과 군만두에 스며든 라드의 풍미는 만두소와는 별개의 맛을 책임진다. 볶음밥에는 오믈렛 스타일의 달걀부침을, 간짜장에는 튀겨낸 달걀 프라이를 올려주는 등 방식을 오롯이 지켜오는 노포다. 인천 미추홀구 토금북로 70. 짜장면 군만두 각 7000원.

◇빠삼 = 살코기와 비계가 층층 쌓여 선명한 색을 자랑하는 삼겹살을 버터에 숙성시켰다. 이 덕분에 구울 때 비계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기름과 버터의 달달한 향이 어우러져 짙은 풍미의 삼겹살을 즐길 수 있다. 빛나는 조연 덕분에 비계가 적은 ‘가브리살’도 퍽퍽하지 않은 상태로 즐길 수 있다. 버터와 기름에 구워낸 채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요리다. 서울 중구 퇴계로41길 43 1층. 빠삼세트(삼겹살+가브리살+안심+채소) 4만8000원.

◇효자동목고기 = 목고기란 결국 목살인데 엄청나게 두툼하게 썰었다. 뜨거운 육즙을 품은 고기가 옆에 붙은 두꺼운 비계 덕에 바싹 구워도, 슬쩍 익혀도 모두 괜찮은 식감을 낸다. 기름을 흘려내고 ‘크리스피’해진 비계의 맛도 살코기 못지않다. 원래 수분율이 적은 제주산 목살이라 그렇다. 여기다 안초비(멜젓과는 또 다르다)를 곁들이면 다시 한 번 감칠맛이 폭발한다. 서울 종로구 종로16길 24 관철동26번지. 제주산 목고기 2만 원, 가브리살(각 200g) 2만1000원, 안초비 6000원.

◇형제집 = 대전에서 오랜 시간 영업해온 연탄 석쇠구이집. 두툼한 돼지 목살을 연탄불에 초벌해 식탁의 번철에 옮겨준다. 한번 불이 간 비계 덕에 향기로운 불맛의 고기를 즐길 수 있다. 센 화력에 재빨리 구워내 촉촉한 고기를 다 먹고 나면 그때부터 비계 맛의 향연이 남았다. 대전 중구 대흥로175번길 34. 고기 한판에 2만7000원, 볶음밥 2000원.

◇초류향 = 서울 원도심 다동의 화상 노포. 잔손이 많이 가는 동파육을 제대로 내는 집이다. 찌고 구워낸 다음 채소와 함께 볶아 부드러우면서도 비계 식감이 살아있는 삼겹 동파육은 여느 곳에서 흉내 내기 어렵다. 두툼하게 깍둑 썰어 조리한 동파육을 배추, 청경채와 함께 입에 넣으면 비계부터 스르르 녹아버리고 껍질 부분이 남아 꼬들꼬들한 식감을 낸다. 백주와 퍽 잘 어울린다. 서울 중구 다동길 24-10. 동파육 3만 원.

◇능라도 = 이북식 녹두전이라 당연히 비계를 쓴다. 비록 녹두 단백질을 쓰지만 비계가 합세해 얼추 고기 맛을 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삼삼하고 담백한 평양냉면의 맛과 퍽 잘 어우러질 테다. 수도권 남부 평양냉면의 성지로 꼽히는 곳으로 곁들임 메뉴로 평양식 녹두지짐이를 내는데 숙주와 파 등 채소와 잘게 썬 비계를 반죽에 넣고 지글지글 부쳐낸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산운로32번길 12. 녹두지짐이 2만 원(반접시 1만 원).

◇딘타이펑 = 미쉐린 스타를 받은 대만 유명 만두집(딤섬 레스토랑)의 서울 지점이다. 작은 광주리에 넣고 쪄낸 한입 크기 샤오룽바오(小籠包)가 시그니처 메뉴. 얇은 만두피 안에서 툭 터져 나오는 육즙의 정체는 바로 비계에서 나온 라드다. 고기와 기름이 뜨거운 찜기 속에서 육즙으로 변신한다. 혀를 델까 젓가락으로 터뜨려 후루룩 마시고 입에 넣으면 순식간에 대만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서울 중구 명동7길 13 명동증권빌딩 2층. 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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