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한 ‘일상의 교감’… 내 삶의 ‘성장 시간’[정신과 의사의 서재]

■ 정신과 의사의 서재

“아무래도 한 마리 있어야겠어.”

아내의 한마디에 삼 개월 된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다.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의 퉁퉁한 아저씨 무타의 이름을 딴 덕분인지 몇 년 후 거대묘로 자라났고, 한 마리를 더 들여 8년째 같이 살고 있다. 당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서먹해지고 있었는데, 처음 가족단톡방이 생겼고 고양이들의 일상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웃을 일도, 공유할 순간도 늘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자기 영역을 찾느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었지만, 고양이들은 집 안에 머물며 나와 여전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듯한 그들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무심결에 넘어가던 성격이 또렷이 비칠 때가 있다.

오사 게렌발의 만화 ‘나의 고양이 여정’(우리나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소개한다. 어릴 때 농장에서 살았던 저자에게 동물은 가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밥을 먹여 살을 찌우고 죽이는 인간을 위해 이용되는 재산이었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몇 마리는 죽이기도 했다. 그러니 정을 줄 수 없었고, 저자는 동물을 싫어한다고 여기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 후 20년이 지나 결혼하고 8세 딸을 키우게 되며 아이의 요청으로 고양이를 다시 입양하면서 그녀의 단단하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첫 고양이 루비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밖으로 나갔다가 놀라서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놈을 데리고 내려오는 소동을 겪은 후, 교감을 하고 돌보는 마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움직임을 관찰하며 루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민하고 남을 믿지 않던 저자는 루비 덕분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 경험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몇 년 후 루비를 떠나보내고 완전히 성향이 다른 개냥이 펜리스를 입양한 이야기에 이어서 야생에서만 지내다가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와 마음을 주지 않는 오씨안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창문 구석에 처박혀 절대 나오지 않던 오씨안을 인내를 갖고 기다리며 몇 달 동안 경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의 축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그녀는 젊은 시절의 나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 과감히 말한다. 그때의 나는 자신을 싫어했었고, 오씨안의 저런 곁을 주지 않는 모습에 질려버렸을 것이라고. 오씨안과 끈기 있는 상호 교감을 하며 저자는 자신 안에 있던 증오를 인내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아무 존재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그깟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 덕분에.

책을 덮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아니라 해도 동물과 함께 지내는 시간과 공간의 인식은 사람과 관계보다 어떨 때는 더 밀도가 있고 켜켜이 쌓인다. 그 덕분에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지켜보며 지금의 나를 비추어 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냥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간식이나 내놓으라 야옹거릴 뿐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