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남긴 ‘조선의 가짜 모습’

사람들은 흔히 사진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진처럼 조작하기 쉬운 것도 없다. 그리고 조작된 사진은 한 자루의 총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일제 강점기를 기록한 사진들은 어떨까. SBS는 19일 오후 11시5분 방송되는 특집 다큐멘터리 ‘일제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사진)을 통해 일본이 남긴 사진과 삽화, 문서기록이 어떤 비밀과 거짓말을 담고 있는지 추적한다.

100여년 전 일본이 만들어낸 조선의 ‘표상’들은 이런 식이었다. 가슴을 드러낸 채 카메라 앞에 선 여인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 미개한 조선의 남성들. 이같은 사진은 엽서로 제작돼 영국과 프랑스 등 세계로 팔려 나갔고, 식민지에 대한 호기심 덕분에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조선의 이미지는 빼버리고 미개하고 가난한 모습만을 포착한 이들 사진은 지배국의 시선만 투영된 것이었다. 제작진은 “이런 사진들은 식민 지배가 박애주의적 선택이었다는 타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될 수 없는 나라’라는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고 역사성과 정체성을 말살시켰던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일제는 다시 자신들을 통해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엽서로 만들어 낸다. 고층 건물과 도로로 채워져 가는 도시, 크게 개선된 철도 등을 담은 ‘치정엽서’는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 지배의 명분을 쌓는 도구처럼 쓰였다.

조선총독부가 제작하고 관리했던 엽서 가운데엔 ‘기생엽서’도 있었다. 조선의 기생은 사진엽서뿐만 아니라 담배와 같은 상품광고, 관광안내 책자 등에도 쓰였다. 여기서 기생은 기예를 갖춘 예술인이 아니라, 매춘관광을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당시 한반도 지도 전체가 춤을 추는 기생으로 표현된 엽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후 전국적으로 봉기한 의병들을 잔혹하게 처형하는 사진도 찍었다. 1910년 3월 처형된 안중근 의사의 처형 직전 모습은 엽서로까지 만들어져 판매됐다고 한다. 자신들의 잔혹성이 드러나는 것 보다 조선의 의로운 항쟁의 뿌리를 뽑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또 1945년 8월15일 정오 천황의 종전조서 발표를 듣고 슬퍼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신문 1면에 게재했다. 제작진은 일본이 스스로의 분노와 굴욕감을 지우기 위해 자신들의 사진까지 조작하려 했다고 분석한다.

강연곤기자 ky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