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호남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한다.’

호남 지역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경제와 예술 분야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호남 역사문화 연구총서’(다할미디어) 전4권이 최근 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전남대 호남학연구단(단장 송정민 교수)이 펴낸 책들은 ‘소쇄원 사람들 - 소쇄원을 통해 본 16~17세기 호남의 역사’를 비롯, ‘조선시대 호남의 회계문화’ ‘호남의 극장문화사’ ‘식민지 조선과 일본 일본인-호남지역 일본인의 사회사’ 등 흥미진진한 주제들로 구성돼 있다.

2005년 10월 출범한 호남학연구단은 그동안 6개 분야 15권의 책을 펴냈다. ‘호남학 자료 총서’로는 ‘호남연표 1: 광주·전라남도’와 ‘호남인물 기초자료’, ‘호남의 시조문학’ 등이 나왔다. 또 ‘다시 읽는 호남학 명저’로 ‘호남 시단의 연구’와 ‘호남 유학의 탐구’ 등이 발간됐다. 이번에 출간된 ‘호남 역사문화 연구총서’를 요약, 소개한다.

◆소쇄원 사람들 = 한국 최고의 원림(園林) 소쇄원에 대해선 조경과 건축, 문학 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가 그동안 이뤄져 왔다. 하지만 소쇄원을 지은 사람과 그 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소쇄원을 통해 본 16~17세기 호남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소쇄원을 짓고, 재건한 양산보와 양자징·양자정, 양천운 3대와 그곳을 드나들던 송순·김인후·기대승·정철·고경명·김성원 등과의 교유 관계를 밝힌 것이다. 한마디로, ‘소쇄원 사람들’이 가정, 관직,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희로애락이나 생로병사, 충효우애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인 김덕진 광주교육대 교수는 현재 소쇄원을 지키고 있는 후손 양재영을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샅샅이 조사, 지연·혈연·학연 관계로 얽히고설킨 양씨 가문의 인적 네크워크를 밝혀 놓았다. 나아가 ‘소쇄원 사람들’의 사상과 활동을 추적, 16~17세기 호남의 역사문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호남의 회계문화 = 전라도 영암 장암마을의 회계 장부 ‘용하기’를 통해 호남 회계문화의 진수를 밝히고 있다. 이 마을 주민 18명은 1667년 각자 벼 1석 씩을 내서 장암 동계를 조직하고 그 이듬해부터 회계장부의 보고를 시작했다. 계를 만든 이후 34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 톨의 곡식 출납도 빠짐없이 기재, 연말 결산 보고서를 만든 것. 또 총회를 열어 비밀투표로 임원진을 선출하고, 최종 감사의 수결을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등 정확한 회계 문화를 유지했다.

저자인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루카 파치올리가 1494년 처음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복식부기’가 사실은 그보다 200년이나 앞선 고려시대 개성상인들에 의해 개발, 사용됐다. 우리 조상들은 그만큼 정확한 회계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는 것이다. 또 조선 왕조의 멸망이 번질난 회계 부정에 의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호남의 극장문화사 = 한국 영화의 중흥기라 불리는 1950년대에서 상대적 침체기로 평가되는 1970년대까지 호남 지역의 영화 수용과 발달의 역사를 다뤘다. 전라남·북도 극장의 역사와 상영작, 극장 공간의 성격, 그리고 관객의 관람 태도까지 분석함으로써 서구 근대 문물인 영화가 호남에서 수용되고 이해되는 방식을 밝히고 있다.

저자인 위경혜씨는 2006년 4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당시 극장 운영자, 영사기사, 변사 등 62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 결과 당시 극장의 생성과 소멸 시기, 상영했던 영화작품, 각종 공연단과 공연 작품, 영화사와 공급사, 영사기사, 변사 등 한국 영화사나 공연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기록들을 꼼꼼히 수록해 놓았다.

◆식민지 조선과 일본, 일본인 =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이 평범한 재조선 일본인들에 의해 더욱 강화, 유지됐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밝히고 있다. 일제 식민지 지배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정한론(征韓論)’으로 대표되는 노골적인 침략사상에 물든 정치가 집단과 군인들에 의해 주도됐지만, 조선에 건너온 일본인 지주들에 의해 더욱 견고해졌다는 것.

저자인 이규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보통 일본인’에 의한 ‘풀뿌리 식민지 지배와 수탈’의 구조를 파헤친다. 저자에 따르면, 비옥한 농업 지대인 호남 지역은 일본인 진출의 주요 대상이었다. 비옥한 농지의 확보와 소작제 농장 경영을 통한 미곡 유출은 일본의 식량 및 인구문제 해결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식민 지배 세력이었던 일본인 사회와 그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식민 지배구조의 특성과 그것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모델을 제시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