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에 휩싸인 숲속 도깨비들 ‘해학’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얽혀 대소동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으로 해석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극단 여행자의 레퍼토리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이다. 3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同名) 희곡을 완전히 각색, 한국 고유의 색채를 더한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이다. 질투에 휩싸인 숲속 요정들의 이야기와 사랑 관계로 뒤엉킨 네 젊은이들의 한바탕 소동에 한국의 흥과 신명, 동양의 색채와 음악을 곁들여 한국적 연희 형식으로 새롭게 만들어냈다.

원작에 등장하는 요정들을 한국 도깨비 ‘돗’, ‘가비’, ‘두두리’로 바꾸고, 사랑에 엇갈리는 남녀들에게도 ‘항’, ‘벽’, ‘루’, ‘익’으로 우리 전래의 별자리 이름을 붙였다. 대청마루와 한지로 꾸민 무대, 삼베와 오방색 천을 사용한 의상 등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사물의 음색과 음율, 한국무용이 가미된 안무 또한 독특하다. 한마디로 ‘한국판 셰익스피어 극’인 셈이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2002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10년간 국내 무대는 물론, 세계 각국의 무대에 올랐다. 2003년 일본 초청 공연으로 첫 해외 공연에 나선 이래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을 비롯해 독일, 폴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과 인도, 쿠바,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에도 진출했다. 이번 명동예술극장 공연 이후에도 해외 공연 일정이 잡혀 있다. 오는 9월 열리는 한·중·일 3국의 연극잔치인 ‘베세토 연극제’ 한국 참가작으로 선정돼 중국 공연을 앞두고 있다. 또한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 36개국의 셰익스피어 극이 모이는 축제에도 한국 대표작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해질 녘 마을 어귀 고목 주위로 도깨비(돗가비)불이 돌아다니며 춤과 악(樂)을 좋아하는 도깨비들의 흥겨운 군무와 노래가 시작된다. 몰래 만나 서로 사랑을 키워온 항(亢)과 벽(壁), 그러나 벽이는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 루(婁)에게 억지 시집을 가야 한다. 마침내 항과 벽 둘은 야반도주하기로 결심한다. 벽이의 정혼자 루 도령을 짝사랑하는 익(翼)이를 우연히 만난 벽이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익이는 루 도령에게 벽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단념하라며 그들의 도망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일은 점차 꼬여만 간다.

한편 이들의 ‘사랑놀음’이외에도 도깨비들의 한바탕 소동도 연극의 한 축을 이룬다. 바람둥이 도깨비 ‘가비’는 늘 처자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 이에 도깨비의 우두머리이자 가비의 아내 ‘돗’은 화가 나 가비를 혼내주고 그 버릇을 고치려 한다. 그녀의 아우인 실수 투성이 빗자루 도깨비 ‘두두리’는 돗의 명을 받고 독초 향으로 사람을 홀린다는 들꽃, 은방울꽃 향기로 가비와 항을 연심(戀心)으로 홀린다. 이때 떠돌이 약초꾼 아주미가 우연히 산길을 가다가 장난기가 발동한 두두리 눈에 띄어 도깨비 씨름, 암퇘지 탈바가지 골탕에 걸려들고 만다. 그러나 두두리의 실수로 홀릴 사람이 뒤바뀌고, 그믐밤 깊은 산속에서 사람과 도깨비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은 “열 살이 된 ‘한여름 밤의 꿈’으로 한국 관객을 다시 만나게 됐다”며 “이번 공연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