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근혜의 覺醒(각성)

윤창중/논설실장

①박근혜 ②이재오 ③홍준표 ④유승민 ⑤남경필 ⑥원희룡…이들 중 ‘가장 원망스러운 정치인’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율이 33.3%가 될지 안될지 속을 까맣게 태우며 지켜보다가 투표 좌절에 통탄의 밤을 보낸 국민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한나라당이 오세훈을 지지하느냐 마느냐는 논란으로 난리판인데도 혼자 독도에 가 헬멧 쓰고 항일독립 보초 쇼 벌인 특임장관 이재오? 당대표 홍준표? 내내 딴청부리다가 투표 당일 오후 3시도 안돼 패배를 기정사실화해 퇴근하고 투표장 나가려는 열기에 찬물 끼얹고, 그런데도 오세훈의 승리라고 앞뒤 안맞는 소리. 왜? 당대표에 쏟아질 책임론부터 미리 차단하려고.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패배하면 자신이 물러나야 하니 오세훈 사퇴를 막다가 끝내 사퇴해버리자 뒤에다 대고 “오세훈은 끝났다”고 악담. 친박계 최고위원 유승민? 투표 임박해 “주민투표와 거리두자”고. 남경필, 원희룡은 투표 패배하자 ‘오세훈, 자∼알됐다’고 웃다가 표정 고치고 온 기색이 역력. 주민투표가 좌절된 밤, 흠흠 마른 기침 참지 못하고 잠자리를 뒤척이던 국민이 뇌리에서 가장 먼저 떠올렸을 인물은 박근혜! 단언한다.

투표율이 33.3%를 넘기지 못할 것 같은 투표 전날, 박근혜가 이번 투표 과정 내내 못본 척했지만 그래도 “투표는 민주시민의 책무” 정도라도 한마디 거들어주면 판세가 결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애간장 태우던 국민을 향해 “서울시민이 판단하지 않겠느냐”?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지방자치단체마다 사정이 다르니 거기에 맞춰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여러 차례 말씀? 짜증 내고 있다. 한번 말하면 알아듣지. 복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맞춤형 복지’이니까 편들 수 없다는 것. 도저히 민심과 소통하기 어려운 어떤 철옹성과 같은 박근혜의 독불여장(獨不女將)-이번에 또 드러난 ‘박근혜스러움’의 극치, 마침내 절망한다. 주민투표 패배가 훤히 내다보이고, 한나라당과 국가가 절박하게 보이는 상황이라면 나서야 하는 것! 대의를 위해! 그게 지도자의 피할 수 없는 정도(正道)! 홍준표가 사퇴하는 오세훈에게 던진 독설, “당이나 국가를 도외시하고 자기 모양만 중요시한다. 혼자 정치하지, 왜 조직으로 하느냐.” 이 말은 태워주는 꽃가마에 올라 청와대에 무임승차하려는 박근혜에게 해당한다.

최근에 친박계 좌장 비슷하게 행동하는 이한구의 ‘박근혜 설거지론’은 압권이다. “꼭 선거과정에서 어려워지면 설거지하라는 식으로 자꾸 내놓고는 책임지라는 식으로 하고, 이런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이게 박근혜 생각;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부친 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고, 오세훈의 대선불출마 선언과 시장직 사퇴는 정치적으로 커보려는 쇼라고. 그래서 설거지이기 때문에 뛰어들지 않았던 것이고, 오세훈한테 좋은 일 왜 하느냐? 근본적으로 주민투표장에 나간 25.7%와 생각을 달리하는 것! 정권을 잡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 정도로 민심 불통이니 정권이라도 잡으면 국민 가르치려고 다그치고, 독재깨나 할 세력이다. 망할 것 같은 집안의 큰딸이 머리 질끈 매고 동생들 일찍 일어나 학교가라고 소리치고, 빨래·청소 다할 줄 알았는데 제 방 들어가 토닥토닥 화장하다가 나와선 죽 쌓인 그릇들 보고 왜 나한테 설거지시켜 하는 소릴 듣는 심정이다. 천안함·연평도 국난(國難) 때 침묵한 것도 이명박 정권이 당한 것 설거지하기 싫어서. 세종시 수정도 끝내 반대해 내년부터 수도가 두 동강난다.

친박계는 박근혜가 10·26 서울시장 보선에 지원하는 조건으로 복지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또 토를 달고 있다. 큰 인심 쓰듯이. 묻는다. 그렇다면 선거 때마다 당직자가 아니니 지원할 수 없다는 박근혜 원칙은 어디? 급해졌기 때문에? 아니면 보선 지원에 나서서 정치판이 복지 포퓰리즘에 도장 찍게 하려고? 차라리 나서지 말라! 박근혜 도움없이도 민주당의 ‘나쁜 투표’에 맞서 투표장에 나간 서울시민이 25.7%나 된다. ‘25.7%+α세력’들로 치르면 비관적이지 않다. 박근혜 지지도가 한 여론조사에서 5%나 급락해 20%대가 됐다. 박근혜, 각성(覺醒)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