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와 용서 맞물림·현실과 뒤엉킨 신화… 전율의 무대

‘소설가 소설’이란 게 있다.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의 작법(作法)에서 의미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풀어놓는 것이다. 이를 빌리자면, 지난 23일부터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고곤의 선물’은 ‘극작가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극작가를 주인공으로, 연극이란 무엇이며 작의(作意)가 관객에게 얼마나 전달될 수 있는가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아울러 ‘고곤의 선물’의 또 다른 서사구조는 ‘복수와 용서’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내러티브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관객들이 한순간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연극 ‘에쿠우스’와 ‘아마데우스’의 극작가 피터 셰퍼의 노년 작품인 ‘고곤의 선물’은 극의 전개방식과 내용에 있어 피터 셰퍼의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연극배우라면 누구나 이 연극에 출연하고 싶어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연극에 대해 이처럼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극 중에서 창작의 고통과 한계는 물론, 서양의 고전과 역사를 넘나드는 방대한 서사를 접할 수 있다.

한 천재 극작가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 세계와 신념을 파헤쳐가는 ‘고곤의 선물’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현실의 이야기와 뒤섞이며, 끊임없이 공간과 시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마치 한 인간의 내부를 해부해가는 추리극처럼 극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을 둘러싼 의문의 껍질들이 하나씩 벗겨진다.

극중 주인공인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은 48세의 나이로 숨진다. ‘우상들’, ‘특권’ 등 탁월한 작품들을 발표했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 ‘IRE’는 관객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이후 아내 헬렌과 그리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에드워드는 벌거벗은 채 절벽에서 떨어진 변사체로 발견된다.

슬픔에 잠겨 있는 헬렌에게 28세의 젊은 연극 교수 필립 담슨이 찾아온다. 그는 에드워드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로, 아버지의 전기를 쓰겠다고 헬렌을 찾아온 것이다. 처음엔 죽음의 내막을 털어놓기를 거부하던 헬렌은 반드시 전기를 쓰겠다는 약속을 받고나서야 필립에게 아버지 에드워드의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2시간30분(인터미션 포함)의 공연시간은 긴장감의 연속이다. 천재 극작가의 비상과 추락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주인공은 온 몸으로 질문을 던진다.

‘번드르르한 용서보다 처절한 복수만이 정답이며, 인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지 않느냐’고 묻는다. 피 칠갑을 한 자신의 몸이야말로 바로 ‘고곤(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 셋 달린 괴물)의 선물’이 아니냐고 다그치는 것이다.

연출 구태환, 정원중·김소희·이동준·고인배·이영석·박선욱 등 출연. 공연은 3월11일까지. 02-889-3561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