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女 정당지도자 세 분, 패거리정치 끊어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오는 24일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동료 시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체면을 챙기지 않고 열심히 발로 뛸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달자 시인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책 읽는 사람’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그분 인상이 참 편안하지 않아요? 따스한 느낌을 줘요. 작품을 보면 감성이 예민한 분인데….”

신달자(69) 시인을 만난다고 하니 직장의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지었다. 몇 년 전 신 시인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이었다. 혼자 걸어가는 신 시인에게 반갑게 인사하니 그는 목례로 답한 후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너무 맑고 아름답지 않아요? 우리는 참 축복받았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에 대답을 듣지 않고 거리의 인파 속으로 다시 걸어갔다. 당혹스러웠다. 그를 다른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 세상과 유리된 괴팍한 언행을 하는 사람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초·중등교사들의 수기를 공모하는 교원문학상 심사 때 만난 그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초등교사 출신인 김용택 시인 등을 포함한 심사위원단의 좌장으로서 회의를 매끄럽게 이끌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위원들 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 서고, 유명 문학인으로서 대중 강연을 하며 언론을 상대해 온 두름성이 절로 드러났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그는 시인 특유의 감성뿐만 아니라 무리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끌어 가는 뛰어난 리더십을 지녔다.

한국시인협회가 제38대 회장으로 신 시인을 선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홀로 고개를 주억거린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시어를 매만지는 사람답게 자신이 뱉은 말을 무겁게 여길 줄 안다.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만나기로 약속한 날을 앞두고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지난겨울 상한 손뼈를 치료하느라 두 달여 동안 깁스를 한 탓에 관절이 약화되고, 그 후유증이 몸살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지난 14일 오후, 몸져누워야 할 상태인데도 약속 장소인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본사 건물의 커피숍에 나타났다. 그의 몸은 한눈에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따라 광화문 교보문고에 기꺼이 따라나서고, 세종로 거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문화일보 사장실 부속 응접실에서 이뤄진 인터뷰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흘리면서도 모든 질문에 열성을 다해 답했다. 인터뷰를 거절했으면 몰라도 이왕 하기로 했으면 그 약속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시인협회장 된 것이 왜 축하할 일이 아닙니까.

(전화로 축하 인사를 했을 때, 그는 ‘축하할 일이 아니지요’라며 정색을 한 음성으로 말했다.)

“위로받아야 할 일입니다. 협회가 할 일은 많은데, 돈도 없고 여러 가지로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저는 우선 돈을 모으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제 후임으로 온 분은 돈 걱정을 하지 않고 꾸려 갈 수 있도록 기금을 모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정부도 찾아가고, 기업도 찾아갈 것입니다. 제가 발로 부지런히 뛸 작정입니다.”

- 오는 24일 취임하는데 벌써부터 어깨가 무거워 보이네요.(웃음) 할 일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뭡니까.

“협회에 문학상이 있는데 상금이 없어요. 뜻이 있는 기업에서 후원해 주면 좋겠어요. 1년에 드는 몇 천만원이 기업에는 작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큰돈이에요. 기금을 모으면 협회의 시인들에게 질 좋은 강의를 듣게 해 주고 싶습니다. 좋은 강의는 시를 쓰는 데 자극이 되고,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니까요. 협회의 뛰어난 인력이 다른 곳에서 강의하는 일도 추진할 것입니다. 고교생, 대학생들과 시인들을 멘토로 연결하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해서 정착시켜 놓으면 다음 회장은 좀 더 쉽게 일을 할 수 있겠지요. 일단은 돈입니다.”

시인의 입에서 자꾸 ‘돈소리’가 나오니 어색했다. 그러나 그는 “체면이나 권위보다는 시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중시할 것”이라며 “잘될지 몰라도 정말 열심히 뛸 것”이라고 했다.

- 37대까지 여성 회장은 세 명(김남조, 홍윤숙, 허영자)뿐이었더군요.

“시인협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남성 중심으로 꾸려져 왔잖아요. 앞으로는 여성 리더들이 많이 나오겠지요.”

- 시인협회 회장은 전임 회장들로 구성된 평의회(현재 9명)가 뽑습니다. 그래서 평의회가 인선 등 협회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던데….

“평의회에 의한 회장 선출은 시인협회의 독특한 제도인데, 지금까지 크게 실수가 없었습니다. 전임 회장들께서 후배들을 매우 잘 아는 덕분이지요. 그 어른들이 협회 운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 중에 받아들일 게 있으면 받아들여야 하지요. 하지만 무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협회 인선 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그 탓이라고들 하지요.

“국내 독자뿐만 아니라 해외 지인들로부터 한국 작가는 언제 노벨상을 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참 난처하지만 저는 분명히 답해 왔습니다. ‘한국엔 좋은 작가와 시인이 참으로 많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급해 하지 마라.’ 우리나라 언어는 상징성을 많이 띱니다. 예전엔 번역 문제가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이젠 한국문학번역원 등을 통해 좋은 번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 각국에 많이 번역돼 나가고 있어요. 물론 해외 거주 한국인이 아니라 현지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해야 하지요.”

― 문인단체가 순수, 참여문학 논쟁을 바탕으로 양분돼 있는 상황입니다. 시인협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시인들을 껴안을 복안이 있습니까.

“글쎄요, 우리가 한국작가회의와 손을 잡고 무엇을 함께해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쪽도 훌륭한 작가와 시인이 많고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단체를 달리하고 있지만 서로 존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쪽이 발전하면 우리가 기뻐해 주며 공존하면 됩니다. 굳이 하나가 될 필요는 없지요.”

― 문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제 분야의 갈등이 심합니다. 그 때문인지 불행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겁니다. 대립이 극심한 정치에서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 경제 쪽에서 빈부 차가 극심하게 드러나는 것, 사회적 박탈감으로 자기 존재를 왜소하게 느끼는 것 등이지요. 제가 예전에 이민박람회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가 궁금해서였지요. 필리핀 부스에서 어떤 남자가 뭔가를 쓰고 있기에 가서 제 신분을 밝히고 사연을 물었어요. 외환위기로 재산을 다 날리고 거리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려고 했더니, 아내가 한국에서는 못하겠다고 하더래요. 다른 나라에서는 뭐든지 하겠지만,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 눈 때문에…. 저는 그날 그분 이야기를 듣다가 울고 왔잖아요. 이 땅에서 자라 이 땅에서 학교를 나오고, 여기서 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게 하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뭐든지 할 수 있는 나라로 가는 사람이 그 하나뿐이겠는가. 지금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그는 눈시울을 붉힌 채 말을 이어 갔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우리 시인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무슨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시인들이 시 속에 고향이 뭔지, 고국이 뭔지를 담아내고, 삶의 어려움을 견디면서 고국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을 키우는 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 이 시대의 중년 남성들은 직장에선 경쟁에 시달리고, 가정에선 대접받지 못한다는 열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50, 60, 70대 남성들은 태어났을 때 사내아이라고 무척 축하를 받았습니다. 자라면서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지요.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울지 못하고 가슴에 울음을 지니고 사는 남성이 많습니다. 지금은 남성들이 무척 힘겨운 시대입니다. 그 힘겨움을 가족들에게 솔직히 드러내 놓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예전엔 돈만 벌어다 주면 가장으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편해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 문제 등 여전히 힘든 일이 많습니다. 대화를 통해 함께 그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가족의 유대감을 키워 가야 합니다.”

― 교육자로서 오래 봉직하셨는데, 학교폭력 문제에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듯싶습니다.

“무섭더라고요. 참 힘든 문제입니다. 교육당국이 먼저 나서야 하지만, 학교와 학부모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맞는 애를 보호해야 하지만, 때리는 애도 살리는 쪽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때리는 애도 어느 집의 귀한 자식이 아니겠습니까.”

― 어느 칼럼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 무엇이 됐든 그 자리에 오르기를 바란다’고 했더군요. 정치인의 수준은 민도만큼이라고 합니다. 후진적 정치 행태는 우리 민도가 정말로 낮아서일까요.

“예전에는 민도가 낮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무엇을 주고 찍으라고 하면 그 사람을 찍고 그랬죠. 이젠 민도가 낮다고는 볼 수 없지요. 지금은 트위터 등을 통해 부는 바람에 좌우되는 듯합니다. 개인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바람을 일으키며 ‘대세야’라고 속삭이면 그쪽이 멋있어 보이고 세련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사에 분명하게 답하는 그의 말이 모호해졌다. 그는 정치 쪽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발언을 하면 본의가 왜곡되기 때문에 언급을 삼가고 있다고 했다.)

― 그래도 이것은 묻겠습니다. 여성 정치인이 현재 주요 정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연을 통해 여성의 사회 활동을 장려해 온 분으로서 흐뭇합니까.

“그렇습니다. 여성 세 명이 정당의 지도자로 나선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70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입니다. 이 세 사람이 정말 멋지게 잘해 주기를 바랍니다.”

― 여성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공천과 합당 등의 과정에서 기존 남성 지도자들처럼 패거리 정치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글쎄, 저는 그분들이 개인이나 당리당략, 패거리에서 탈피해 지금의 대한민국에 부재하는 희망을 새롭게 일으켜 세웠으면 합니다. 여성 지도자들 덕분에 한국 정치사에 큰 변화가 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줬으면 합니다. 이 땅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 수 있는 묘안을 찾아 주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이 나쁘더라도 그 속에서 희망을 일궈 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우리 정치인들에게 필요합니다.”

― 정치권으로부터 입문 제안을 받은 적이 있을 텐데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도 제대로 못하는데, 옆에 무슨 눈길을 주겠습니까. 우리 정치인들이 잘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사실 저는 마음이 약하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몸도 자주 아픕니다. 아시다시피 2005년에 암 수술도 했잖아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보면 저 자신이 무척 기특합니다.(하하)”

그는 웃었지만, 듣는 이의 마음은 시렸다. 그는 유명 문학인으로서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신산한 삶을 견뎌 온 여성이다.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간병하고, 설상가상으로 낙상해서 몸져누운 시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게다가 자신까지 유방암에 걸렸으니….

그는 이런 개인사를 주변에 드러내지 않다가 60세가 넘어서야 수필집을 통해 털어놨다.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눈물을 짓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최근 몇 년간 이런저런 자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이제는 더 말하지 않으려 해요. 다만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어요.”

― 시인으로, 소설가로, 수필가로 대중적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문학계에서는 그 유명도만큼 인정해 주지 않았는데, 섭섭하지 않았습니까.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문단에서는 시인이 이런저런 일을 다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저것을 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지향은 분명히 시 쪽입니다. 강연을 나갈 때는 돈이 얼마냐고 분명하게 물어봅니다. 밥벌이니까요. 하지만 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돈 벌자고, 인기 누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는 60세가 넘어서 시인협회상, 현대불교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문학계가 그의 작품에 잇달아 상을 수여한 것은 그가 노년에 이르러 시적 긴장을 더 강화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는 이와 관련, “어느 문학상 심사평에 ‘시가 기적적으로 나아졌다’고 했더라”며 앞으로도 시적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고 했다.

― 시 독자가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습니다. 시는 읽히지 않는데 시인은 넘쳐 납니다. 어떤 시인은 ‘개나 소나 다 시인이라고 한다’며 자조하던데요.

“시 독자가 줄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으로 시집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훌륭한 나라입니다. 시인이 많이 등장한 것은 문화센터 등에서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강좌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적은 것보다 낫습니다. 골프를 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보다 듣기 좋지 않습니까.”

인터뷰 = 장재선 부장대우(문화부)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