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부인의 권태·자살… 공감하기 어려운 결말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연극이다. 지난 2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헤다 가블러’는 일반관객들에게 결코 ‘친절한’ 연극이 아니다. 헨리크 입센 원작의 연극은 전체 4막으로, 장장 2시간30분에 걸쳐 진행된다. 고전 명작이지만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주인공 헤다의 심리상태가 워낙 복잡미묘해 관객들은 그녀의 결정에 쉽사리 동감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헤다는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연극의 줄거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헤다는 곧 교수가 될 문화학자 테스만과 결혼, 6개월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아름다운 저택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고지식한 테스만과 함께해야 할 결혼생활이 헤다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여겨진다.

그런데 헤다의 동창이었던 테아가 집으로 찾아온다. 자신의 연인인 뢰브보르그를 찾아 이 도시로 온 것이다. 뢰브보로그는 헤다의 옛 애인이자 남편 테스만의 친구이기도 하다. 방탕에 빠져 있던 뢰브보르그는 테아의 도움을 받아 새 책을 집필한 상태. 네 사람 간의 미묘한 각축전이 전개되는 와중에 속물인 브라크 판사 또한 헤다에게 접근한다.

테스만은 뢰브보르그, 브라크 판사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다. 다음날 아침 테스만은 뢰브보르그가 떨어뜨린 원고를 주워왔다며 헤다에게 새 책의 원고를 보여준다. 원고를 잃어버린 뢰브보로그는 거의 실성한 상태로 헤다를 찾아오지만 그녀는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뢰브보로그에게 권총을 주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라’고 다그친다. 자신의 마지막 요구마저 뢰브보르그가 실행하지 못한 것을 안 헤다는 스스로 최후를 맞는다.

우선, 헤다는 극 중의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독립적이다.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하다. 헤다는 사랑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그녀는 남성을 위한 삶보다는 그녀 자신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헤다는 왜 죽음을 택하는가. 표면적으로 본다면 지긋지긋한 결혼생활과 옛 연인마저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진 것이 참기 어려웠으리라.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입센의 명작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자신의 삶을 위해 가정을 박차고 나간다면 헤다는 삶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하자면, 한계상황에 부닥친 귀족계급의 자멸로도 읽을 수 있다. 헤다 역을 맡은 이혜영의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이 돋보인다. 김수현·호산·강애심·김성미·김정호·임성미 등 출연. 1644-2003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