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예술적 영감’ 흠모한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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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 레이첼 코벳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생활苦 시달리던 27세 릴케
대조각가 로댕과 운명적만남
무명 작가에겐 ‘神的 존재’
조각 보며 작가되는법 깨달아

너무나 대조적인 성향 두사람
어떻게 상호보완 되었나 조명
젊은 예술가들에 용기 북돋워

윤동주는 대표작인 시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시인 릴케의 이름을 붙였다. 독일 출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그만큼 당대 청년 문학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문학의 대가이자 위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릴케 역시 청년기에 미성숙하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으며, 위대한 시인이 되기까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오귀스트 로댕이라는 조각가가 뒤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책의 저자가 “로댕이 산이었다면 릴케는 그 산을 에워싼 안개였다”고 설명하듯, 릴케는 로댕이라는 거장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인식하고 변화시켜갈 수 있었다. 이 책은 1900년대 초 60대의 합리적 프랑스인 로댕과 20대의 낭만파 독일인 릴케, 두 사람의 삶이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한 사람의 예술적 진전이 어떻게 상대방의 것을 따라갔는지를 기록한 다층적이고 서정적인 탐구서다.

1902년, 가정을 이룬 뒤 생활고에 시달리던 27세의 릴케는 로댕에 대한 논문 집필 의뢰를 받고 프랑스 파리에서 62세의 로댕을 처음 만났다. 이미 전 세계에서 작품 주문을 받는 거장이었던 로댕의 표현력 풍부한 세계에 젊고 낭만적이었던 시인 릴케는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가 로댕에게 끌린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과 다르다는 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릴케는 ‘진짜들 사이에서 진짜처럼 느끼고 진짜로서 존재하기를’ 갈망했지만 스스로는 여리고 무명의 존재에 불과했고 로댕은 그 반대편에 있는 신적 존재였다. 이는 릴케가 187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강요로 사춘기에 접어들 때까지 여자아이 옷을 입는 등 분열된 자아를 경험했던 사실과 무관치 않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 뫼동의 한 정원에 서있는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그의 부인 로즈 뵈레,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오른쪽부터).

그러던 릴케가 만나게 된 로댕은 평생 그 자신이 왜 예술가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또 방황하는 릴케에게 “일하라, 늘 일하라”고 강조하면서 세속적 쾌락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예술에 천착하고 정진하는 삶을 주문했다. 로댕은 릴케에게 스스로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물로 ‘들어가서 보는’ 관점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후일 릴케의 출세작인 ‘신시집’ 출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릴케는 로댕이 가장 신임하는 비서로 일하면서 로댕의 조각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아 그토록 소망하는 작가가 되는 법을 깨달아가게 된다.

사소한 다툼으로 한동안 로댕과 멀어진 릴케는 로댕이 급변하는 시대 조류 속에서 구닥다리로 취급되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할 무렵, 다시 그를 찾게 된다. 로댕과 재회한 그는 더 이상 로댕을 신격화하지 않고 동등한 예술가의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릴케가 몸통만 남은 아폴론 상을 보고 지은 시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 마지막 문장에서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고 한 것은 로댕에게서 졸업해 독립된 예술가로서 자신을 세우고자 하는 의식의 발로로도 볼 수 있다. 릴케가 처음 로댕을 만난 후 이렇게 변화하는 동안의 고민과 심정을 예술가 지망생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편지로 남겨 후일 엮은 것이 그 유명한 책 ‘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결국 “젊은 예술가들이 지독한 현실마저 극복하고 기필코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고야 마는 이야기”이자 “속박되고 연약하고 굶주린 눈을 지닌, 그러나 언젠가는 지친 손을 들어 올려 도구를 집어 휘두르기를 소망하는 모든 청춘에게 하는 이야기”다.

거장이 되는 길을 찾아 파리의 굽이진 거리를 헤매다 인생의 스승인 로댕을 만났던 릴케가, 과거 자신과 같은 고민으로 번뇌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건네는 소박한 한마디다. 404쪽, 1만8000원.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