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통행료 폐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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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정치인이나 권력 집단은 선심성 현금복지를 가장 효율적인 선거 전략으로 삼는다. 공짜라도 일단 받으면 마음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내 든 선심 카드가 명절 연휴 동안의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였다. 하지만 공짜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설 명절 연휴 3일(1월 24∼26일) 동안 한국도로공사는 통행료를 걷지 못해 약 500억 원의 손실을 봤다. 올해 추석까지 합하면 1000억 원가량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현 정부의 통행료 선심 탓에 한국도로공사의 재무 건전성은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가뜩이나 부채에 허덕이는 마당에 2019년 29조 원의 부채 규모가 2023년에는 36조3600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공기업 부채는 나중에 세금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돈 좀 있는 사람들한테 세금을 거둬 일반 국민 모두가 혜택을 받는 것인데 뭐 그리 각박하게 구느냐고 힐난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 불행히도 통행료 면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는 저소득층이라 할 수 있다.

고속도로 건설에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저소득층 역시 각종 소비세를 통해 건설에 기여한다. 반면 고속도로는 국방·교육 등과 달리 편익을 누리는 부류가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자가용을 소유하지 못한 저소득층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고속버스를 타면 요금 안에 통행료가 들어 있다. 그러니 고속도로 공짜 통행은 주로 중산층 이상 국민이 누리는 특권이 되고 만다. 정부가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특정 공공재로부터 이익을 받거나 그것을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행정 원리다. 예를 들어 휘발유세는 도로 사용자가 휘발유 사용량에 비례하여 납부하고 여기서 거둔 세금은 도로 건설과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 자가용 승용차 소유자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야 총선 예비후보들이 요즘 경쟁적으로 도로나 터널 등의 ‘통행료 폐지’ 공약을 내걸고 있다.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친다는 이야기는 이제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세태가 되고 말았다. 이게 다 누구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