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살이 수년째… 월병 대신 송편 빚으며 그리운 친정생각 달래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예향재 사랑채에서 열린 ‘다문화 가족과 함께하는 송편 빚기’ 행사에서 베트남, 몽골, 필리핀 등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들이 성북새마을부녀자회 등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고향 전통 의상을 입고 송편을 만들고 있다. 박윤슬 기자,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이주 외국인의 추석

결혼하며 이주한 외국인들
전통 옷 입고 송편빚기 체험
고향음식 떠올리며 조물조물

한국어·한식 익숙해졌지만
명절이면 고향 생각 간절해
지원센터서 다양한 교류행사

결혼을 계기로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여성들에게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은 풍성함과 동시에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때이다. 바쁜 일상에 떠밀려 잊고 있었던 머나먼 고향과 만질 수 없는 친정 식구들이 새삼스레 선명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데다 어린 자녀가 있으면, 아무리 가족들이 보고 싶어도 본국을 찾으려는 계획을 손쉽게 접게 된다. 이들이 가족들을 본 지 수년이 가볍게 넘어가는 이유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명절이 되면 시댁 가족들과 북적북적 풍성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어느새 밀물처럼 밀려오는 허전함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한다.

지난 19일 만난 캄보디아에서 온 한라니(여·27) 씨는 추석을 맞아 캄보디아의 전통 예복인 ‘삼포트 파뭉(Sampot Phamoung)’을 꺼내입었다. 그는 20세가 되던 해인 지난 2016년,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왔다. 장난기 있는 얼굴에 앳된 티가 아직 남아있지만, 무려 두 아이의 엄마다. 한국에 온 지 햇수로만 8년 차인 그는 그동안 한국어도, 한식 요리도 수준급으로 늘었다. 이번 추석 명절도 시댁에서 보낼 예정이라는 그는 캄보디아의 추석인 ‘프춤번(Pchum Ben)’을 설명하며,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놨다.

“캄보디아 동쪽에 있는 캄퐁참(Kampong Cham)이 제 고향이에요. 그곳에 있을 땐 프춤번 명절에 가족들 손을 잡고 사원에 갔어요. 이 시기엔 조상이 어느 사원에 있을지 모르니 7일 이상 사원을 방문해야 해요. 절에선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곤 했어요.”

결혼한 이후 코로나19와 어린 자녀들 때문에 캄보디아에 단 한 차례밖에 못 갔다던 한라니 씨의 얼굴엔 그리움이 선명했다.

‘당씨모’라는 베트남 이름보다 직접 만든 한국 이름이 이젠 더 익숙해진 이하은(여·31) 씨는 떡집 매대 위 송편을 보면 베트남의 추석 ‘뗏쭝투(Tet Trung thu)’에 먹는 월병 ‘반쭝투(banh trung thu)’가 떠오른다. 이 씨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의 추석 ‘뗏쭝투’는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라며 “시내엔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공연이 펼쳐지고, 가족들은 반쭝투를 나눠 먹는다”고 했다. 대부분 반쭝투를 시장에서 사 먹는 베트남과 달리, 한국은 온 가족이 함께 송편을 빚어 먹어 더 정겹게 느껴진다고도 이 씨는 덧붙였다. 한국에 온 지 7년이 넘었다는 이 씨는 3세, 5세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그는 고향 생각이 짙어지는 명절이 되면 동향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이 씨는 “지난 설엔 베트남에서 설(Tet) 명절에 먹는 케이크인 반쯩(banh chong)을 베트남 친구들이랑 해먹었다”며 “이젠 한국에 다 적응했다고 생각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남아있다”고 했다.

필리핀엔 추석이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만성절(All Saint’s day)’이 있다. 포티안 엠마(여·50) 씨는 만성절이 되면 온 가족이 모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통상 필리핀에선 만성절에 온 가족이 모여 성묘를 간다. 하지만 엠마 씨 가족들은 교회에서 예배하고, 필리핀 전통 요리인 수만(suman)과 뿌토(puto)를 만들었다. 또 깡통을 슬리퍼로 맞히는 전통놀이인 ‘툼방 프레소(tumbang preso)’와 ‘송카(sungka·여러 구멍에 조개를 옮기는 게임)’를 하기도 했다.

이들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다문화 가정·외국인 지원 단체는 명절 맞이 각종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 성북구는 19일 성북동 예향재 사랑채에서 다문화 가정 10명을 초대해 ‘송편 빚기’ 프로그램을 열었다. 몽골에서 온 부양히식(여·33) 씨는 몽골 전통의상 ‘델’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옷을 입고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몽골에서 설에 자주 먹는 고기만두(보즈)를 떠올리며 만들어봤는데 쉽지 않았다”며 자신이 만든 송편을 들어 보였다. 이들에게 송편 빚는 법을 알려준 신현화(여·62) 씨는 “타국에 와서 외롭게 지내는 외국인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나섰다”며 “이렇게 자주 교류하다 보면 엄마와 딸 같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성동외국인노동자센터는 한국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추석선물세트 신청을 받았다. 한국 전통 음식에 도전하고 싶은 네팔인, 중국 전통 음식이 그리운 중국인 등 5명이 제각각의 사연을 보내며 신청했다. 대부분 혼자 사는 비숙련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권승현·강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