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 인간의 참상에 도망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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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기념 ‘공식 전기’ 출판
숨겨진 인간적 번민·고뇌 담아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 이태석 신부는 세상의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성자(聖者)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그에게도 인간의 참상을 끔찍이 여겨 도망쳤던 순간이 있었다.

그를 아프리카 톤즈로 이끌었던 제임스 신부를 따라 한센병 환자 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50여 명의 남녀노소가 움막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먹질 못해 뼈만 앙상한 환자들의 상처에서 고름이 터져 흘렀고, 아기들은 삐쩍 마른 엄마 젖을 빨다가 지쳐서 울어댔다. 그 처참한 광경이 무섭고 움막에서 나는 악취가 역겨워서 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와 들판으로 달음질쳤다. 텅 빈 들판에서 묵상하며 깨달았다.

아프리카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려면, 아픈 이들을 돕는 의술뿐만 아니라 혹독한 상황을 품을 수 있는 내적 영성이 있어야 함을.

책 ‘신부 이태석(김영사 발행·사진)’은 지난 2010년 48세로 선종(善終)한 이 신부의 삶을 기록했다. 10주기 사업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출판 인가를 받은 공식 전기다. 아프리카 톤즈의 눈물을 닦아 준 사제의 길을 다루며, 또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번민과 고뇌도 담고 있다. 지난해 나와야 했는데 코로나19 탓에 취재에 어려움이 있어 늦어졌다고 한다.

저자인 이충렬 작가는 이 신부가 남긴 친필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그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육성을 담았다. 특히 인도 출신으로 수단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이 신부와 함께 봉사했던 제임스 신부를 국내 최초로 인터뷰해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책에 수록한 100여 장의 사진은 이 신부의 생애를 다각도로 되새기게 하며, 보는 이를 울고 웃게 한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