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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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삶 속으로 깊게 치고 들어온 인공지능(AI)에 놀랐지만 그만큼 미래에 대한 준비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 전문가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AI 논의가 쏟아지는 어지러운 현실 앞에 AI 역사를 쉽고도 깊게 정리하고 그 미래를 내다본 ‘인간 VS 기계’를 내놨다. AI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최신 기술 발전까지 업데이트해야 하는 마음 바쁜 우리 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지난해 책 출간을 위해 진행한 강연을 풀고 알파고 대국 이후 상황을 덧붙인 것이니 ‘행운의 시간차’이자 ‘시간을 앞선 통찰’이다. 무엇보다 책은 과학의 시대, 이제 오랫동안 인문학의 독보적 영역이었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유’에서 인문학자가 과학자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AI 역사를 기술 발달사만으로 정리하지 않고 2500년 전 서양 철학의 뿌리로 거슬러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 같은 인식이 어떻게 AI 기술에 연결, 발달해왔는지 풀어낸다. AI 역사는 과학이 인간을, 인간 정신을, 보다 구체적으론 인간 뇌의 작동방식을 해독해 인간과 가장 비슷하게 작동하는 기계를 만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인문과 과학의 통섭작업으로 AI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에 모인 과학자들이 처음 쓴 말이라고 한다. 이들은 컴퓨터에게 복잡한 계산과 미적분을 거쳐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6년간 씨름해 증명한 수학 원리를 풀게 한다. 놀랍게도 임무 완성!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기계가 인간에게는 너무 쉬운 일을 못 한다는 점이다. 어린이도 할 수 있는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는 것, 계단 올라가기 같은 것이다. 그 후 50여 년은 이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는 수천 년에 걸친 인간 이해의 역사가 복기 되고,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구성되며 신경정신망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된다. AI가 개와 고양이를 파악하려면 이들의 특징은 물론 세상 모든 개와 고양이를 설명하는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한 데 비해 어린이는 어떻게 개와 고양이를 한두 번만 보고 알 수 있는가. 여기에 인간의 비밀이 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진화한 집단적 능력, 경험을 통한 학습, 새 정보를 기존 기억과 엮어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 한 번 보고 전체를 파악하는 원샷 학습(one-shot learning) 등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하나씩 더해가면서 AI 연구가 진행됐고 결국 2000년대 들어서 이를 해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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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결과는 알파고를 가능하게 한 자체 인공 신경망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가 ‘직관’에 대한 해석이다. 알파고 대국에서도 AI가 인간 고유 영역인 ‘직관’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과학자들은 ‘직관’을 좀 다르게 해석했다. 이세돌이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수를 놓아야 할지 아는 직관. 과학자들은 이를 신비의 영역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비정형화된 정보라고 했다. 인간은 과연 언어 없이 사고할 수 있는가 라는 오랜 논의와도 연결돼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AI의 역사를 살펴본 저자는 미래로 나간다. 증기기관이 이끈 1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으킨 2,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이제 AI가 선도하는 4차 산업 혁명 초입에 서 있다는 저자는 미래를 ‘인간 VS 기계’로 정리했다. 그가 그린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저자는 사람처럼 보고 이야기하고 읽고 쓰고 정보를 조합하는 약한 인공지능이 30년 내에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AI로 인해 상당수 직업은 사라지고, 부는 더욱 집중될 것이며, 사람들에게 일자리 대신 24시간 자극적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디스토피아도 예고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강한 인공지능, 자유의지를 갖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이 경우 ‘인간 대 기계’의 대결에서 인간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깊게 생각하는 기계의 승리는 필연적이다. 저자는 이때 두 가지 가능성을 예상했다. AI가 인류와 공존을 택하는 경우와 인류를 멸종시키는 경우. 어떤 경우든 결정권은 AI에게 있다. 저자는 독립적이고 강한 기계가 인류와의 공존이라는 결정을 내리려면 인간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활동을 할 수 있는 고등 동물인 인간야말로 무의미한 우주에서 당신 존재를 인식해 줄 소중한 존재”라고 어필하는 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까지 인간이 지구에서 해온 일들을 돌아보면, AI가 우리를 괜찮게 봐줄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이런 디스토피아가 공포스럽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 우리의 운명은 인간다움의 완성에 달렸다고 했다. “우리가 기계를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이미 기계 같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이 가진 유일한 희망은 우리는 기계와 다르다이다. 그 차별화된 인간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인간은 계몽을 스스로 완성하고, 윤리와 도덕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을 빠른 속도로 해독해 복사하는 AI에 대항하는 길은 결국 인간다움이라는 결론. AI시대 인간은 다시 근본적 성찰로 돌아가게 됐다. 흥미로운 책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