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서 24세에 억울한 죽음… 그리고 용서와 화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미안합니다 - 박병현(1956∼1980)

5·18민주화운동.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5월이면 생각나는 그 이름 박병현. 가슴 아픈 그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다가온다. 2001년 4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이 계엄군에 사살돼 암매장됐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필자는 그 제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예비조사를 담당했다.

그때 제보자와 목격자, 유족 등 많은 사람을 만나 봤다. 특히 피해자의 큰형은 자신의 동생에 대해 심성이 착하고 형제 중에서도 똑똑하고 효심이 지극했다고 했다. 억울한 죽음에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피해자는 군대를 막 제대하고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일을 못 하게 되자 고향 친구와 부모님의 모내기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으로 가던 길에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변을 당했다. 역지사지로 피해자가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박병현(당시 24세) 씨 사건은 사실 확인이 이뤄져 5·18민주화운동 관련 공권력에 의한 사망자로 인정돼 보상금이 지급됐다. 또한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는 등 이미 명예회복이 된 경우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24조 3항의 ‘사실확인이 되고 구제조치가 된 경우 직권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위원회에서 직권조사를 하지 않았다.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법과 규정을 떠나 피해자에게 도의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피해자에게 직접 총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를 밝혀 억울한 원혼을 달래주고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데 미력하나마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한 조사관과 함께 그 당시 가해자인 공수부대원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처음에는 필자를 알아보지 못하던 그가 과거 의문사위원회의 경찰청파견 해군 출신 조사관이었다고 말하자 순간 멈칫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인사를 나눴다.

당시 그는 군인 신분으로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는 심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 당시 제보자와 목격자, 중요 참고인 등의 증언과 피해자 사체검안서와 부검기록 등의 내용을 종합해볼 때 그가 총격을 가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데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그는 그간 여러 가지로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며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는 극단적인 선택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뒤 오히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진정한 사죄를 하고 화해를 이루는 게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머뭇거리다 결국 진실을 고백했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언론을 통해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통해 유족들과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용기 있는 행동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큰 박수를 보낸다. 또한 용서와 화해로 가해자를 품어준 유족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지면으로나마 꼭 드리고 싶다. 끝으로 고 박병현 씨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문영호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경찰청파견 조사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